지난 5월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한 패션쇼 때문에 떠들썩했다. 유명 신발 디자이너 얀 핸슨이 디자인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되는 샌들 '플라키' 런칭 쇼였다. 네덜란드 톱 모델들이 캣워크에 서고 주요 정 · 재계 인사들이 참석한 이 쇼에는 네덜란드 언론 수십여곳이 찾아와 열띤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날 주목받은 것은 화려한 무대나 패션이 아니라 이 신발공장 프로젝트를 주도한 2명의 청년이었다. 델프트공대(TU델프트)에 다니던 학부생 아르나우드 로젠달(항공공학 전공)과 마이클 뵈리그터(산업디자인공학 전공)은 2년여 전 남아공의 빈민가에 공장을 설립해 폐타이어를 이용해 편하면서도 최신 유행을 담은 샌들을 만들 궁리를 시작했다. 버려지는 타이어로 인한 환경오염도 막고 지역사회에 장기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이들은 학교의 지원을 받아 얀 핸슨과 네덜란드 자선기구 '키즈라이트'와 협력할 수 있었고 올해 초 70명을 고용하는 진짜 공장을 차렸다. 로젠달은 "동정 · 자선만으로는 사람들의 자립심을 깨우고 발전을 이룰 수 없다"며 "고용을 창출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 특히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대학생들에게는 기업을 차리는 경험이 드물지 않다. 네덜란드 대학들은 경영학 수업이든 공학 수업이든 대부분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하고,가능한 방법을 총 동원해 이를 해결하도록 하는 '문제해결기반 교육(PBL)'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 수업은 '지금껏 배운 것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업을 설립해 보라'를 최종 과제로 제시한다.

독일에서 유학 온 HZ대학 경영학과의 캐롤린 포트(20)는 "1학년 때는 그룹활동과 사례 연구 위주로 이뤄지는 소규모 강의를 주로 들었고 2학년 때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10여명의 학생들이 진짜 회사를 설립했다"며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던 값진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델프트공대 커리어센터장 캐롤린 쉽메이커씨는 "학교 당국을 비롯해 교수들과 전문가진이 버티고 서서 학생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팀워크를 통해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대학들은 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 중 처음으로 영어 수업과목을 개설할 정도로 국제적인 분위기다.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이 1460여개에 이른다. 유학생은 7만6000명에 달한다. 유트레흐트대학의 국제교류 담당 마를루 더 퀴퍼씨는 "네덜란드 대학들은 대부분 100여개국 출신의 학생들이 한 데 모여 있다"며 "이는 풍부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된다"고 자랑했다.

실용주의와 창의성이 결합된 네덜란드식 교육은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 작년 타임즈가 발표한 대학 랭킹 상위 200곳 중 네덜란드 대학은 11곳에 달했다. 네덜란드 전체 대학 55곳 중 20%가 포함된 것이다. 200위 대학 중 절반 이상이 미국 · 영국대학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네덜란드교육진흥원(Nuffic) 관계자는 "네덜란드 교육이 인정받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실용주의와 개방성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을 실시하는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델프트 · 암스테르담 · 유트레흐트(네덜란드)=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