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만에 재회한 남매 하염없는 눈물

19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 노성호(48)씨가 남측 누나 순호(50)씨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갔다 오겠다던 동생은 북쪽의 부인, 딸과 함께 22년 만에 나타났다.

누나가 먼저 동생을 알아보고 눈물을 삼키며 동생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뒤돌아보던 동생은 누나를 보는 순간 북받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누나는 동생 어깨 위에 눈물을 떨궜다. 부둥켜 안은 남매는 말이 없었다.

둘은 서로 얼굴만 응시한 채 눈물을 흘리다 누나가 먼저 울음을 가라앉히며 "너무 반갑다. 너무 보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동생은 "여기 와서 장가도 가고 대학도 가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며 "내가 여기 와서 대학 다닌다고 하면 거기서 알고 있던 사람들이 믿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에서 어엿한 직장도 다니고 있다"고 말을 잇는 동생에게 누나는 "잘 됐어. 잘 돼 있으니 흐뭇하다"고 받아줬다.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의 부인 윤정화(44)씨와 딸 노충심(21)씨도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했다.

누나가 동생을 보며 "부모 없이 자라 힘들게 컸다"고 하자 윤씨는 "우리 부모님의 사위 셋이 당원인데 부모님이 막내 사위인 남편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딸은 "오랜만에 만났으면 웃음이 나와야지 울음이 나와서 되겠느냐"고 웃으며 고모의 손을 얼굴에 갖다 댔다.
누나 노씨는 그제야 조카를 보며 "아빠 닮아서 예쁘게도 생겼네"라며 환하게 웃었다.

노성호씨가 탔던 '동진 27호'는 1987년 1월15일 인천에서 출항,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북측에 나포됐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인민군 해군 경비정이 1월15일 오전 11시43분경 우리나라 서해 장산곶 서북쪽을 불법 침입한 남조선 선박 1척을 단속했다"고 보도했었다.

북한의 적십자회는 동진 27호의 나포 6일만에 송환의사를 밝혔으나, 김만철씨 일가족 탈북 사건으로 무산됐다. 이후 북한은 동진 27호 선원들이 "의거 입북자"라고 주장하며 돌려보내지 않았다.

누나 순호씨는 당시 동생이 동진호를 타러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니 배 타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 성호씨는 "지난 번에 배 탄 돈을 못 받아서 이번에 마지막으로 갔다 와서 돈 받으면 다른 일이라도 차리겠다"며 동진호에 올랐다.

누나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렵게 살았지만 누나로서 동생을 잘 보살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면서 "그때 결사반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남매는 어릴 때 한번도 싸운 적이 없을 정도로 우애가 각별했다고 한다.

순호씨는 "동생을 업고 다니면서 대추도 따다 먹여주고 그랬다"면서 "누나한테 말대꾸 한번 한 적도 없고, 나도 동생 한번 다그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순호씨는 "(동생이 북에서) 혼자 어떻게 살까 걱정했는데, 북한에 있지만 처자식과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성진 김승욱 기자 sungjin@yna.co.kr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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