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의료봉사단체 단원 고(故) 엄영선씨가 예멘에서 피랍 살해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누가 이번 범행을 주도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엄씨는 지난달 12일 오후 4시께 이웃에 사는 외국인 단원 및 가족 8명과 함께 인근 계곡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실종된 뒤 피랍 3일 만인 15일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엄씨, 그리고 함께 발견된 독일인 간호사 2명 등 3명이 전부다.

독일인 부부와 아이 3명, 영국인 기술자 1명 등 나머지 6명의 생사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외국인 납치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예멘에서는 납치 직후 관련 단체가 정부나 협상대상 기관을 상대로 인질 석방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범행을 주도했다고 자처하는 단체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한국인 관광객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3월 예멘 시밤유적지 테러사건 당시에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번에는 알-카에다 조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예멘 정부는 당초 이번 사건이 알-후티 반군의 소행이라고 밝혔지만 알-후티 반군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반박했다.

결국 예멘 정부도 현상금 27만5천달러(한화 3억5천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범인 색출을 위한 정보수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지 테러 전문가들은 엄씨 등이 납치 직후 잔혹하게 살해된 점으로 미뤄볼 때 우발적 납치가 아니라 사전에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이슬람지역에서의 기독교 선교활동에 대한 반발이 이번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슈피겔은 독일 외무부 특별전담팀으로부터 확보한 정보를 인용, 피랍 독일인 중 1명이 몇 달 전 무슬림으로부터 선교활동을 중단하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독일 수사관들은 엄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독일 간호사 2명의 소지품에서 선교 책자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엄씨가 소속돼 있던 월드와이드서비스는 지난 10일께 예멘 사다 지역에서 단원들을 모두 철수시켰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이런 가운데 생사가 불투명한 피랍자 가족들의 근심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피랍자 가족 일부는 지난 11일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 피랍자들을 하루빨리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