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지난 1년은 사자성어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작년 7월3일 전당대회에서의 `우공이산'(愚公移山.한 삽씩 떠서 산을 옮긴다)이라는 취임 일성을 시작으로, 박 대표는 주요 현안 및 전환점에 맞닥뜨릴 때마다 사자성어를 입에 올려왔다.

박 대표는 실타래처럼 꼬인 상황, 복잡한 심경을 단 네 글자로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왔다.

4년3개월의 최장수 대변인을 지내며 `명대변인'으로 불려온 박 대표의 오랜 습관이자 강점인 셈이다.

취임 직후 박 대표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계속된 촛불집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 대형 악재에 잇따라 직면했다.

박 대표 표현대로 `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은 겹쳐서 온다) 그 자체였다.

박 대표는 지난 5월말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북한의 2차 핵실험이 겹쳤을 때도 `화불단행'을 언급했었다.

출범 초기 악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화합을 내건 박 대표는 친이(친 이명박), 친박(친 박근혜) 진영간 갈등 해소에 주력했고, 뜨거운 감자였던 친박 인사 복당.입당을 이끌어냈다.

화합 행보가 본격 시작된 작년 7월30일 첫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표 등을 맞이한 박 대표는 `화기만당'(和氣滿堂.화목한 기운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이라는 말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지만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졌고, 이후 박 대표는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춘 사자성어를 연발했다.

지난 연말연초 각종 회의 및 행사에서 `고장난명'(孤掌難鳴.한 손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동주상구'(同舟相救.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서로 돕는다), `만파식적'(萬波息笛.만개의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 등 경제난 돌파를 위한 공동의 노력과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여야간 극한 대치로 소위 경제살리기 법안들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자 `일모도원'(日暮途遠.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문다), `전광석화'(電光石火.재빠른 움직임) 등의 사자성어로 `속도전'을 주문했다.

또한 2009년 신년사를 통해 `석전경우'(石田耕牛.돌밭을 가는 소)라며 "소처럼 경제위기의 돌밭을 갈아매어 선진일류국가라는 옥토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경제위기 극복에 매진해온 박 대표는 4.29 재보선 참패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당 일각의 당.정.청 전면쇄신 요구는 물론 박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재보선 참패 직후인 지난 4월30일 의원총회에서 `서정쇄신'(庶政刷新.여러 방면에서 정치폐단을 고쳐 새롭게 함)을 거론, 쇄신 의지를 표시했다.

쇄신.화합의 일환으로 처음 내놓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가 무산되자, 지금은 `태화미수'(太和未遂)의 상황이나 화합 노력은 계속되는 `태화진행'(太和進行)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기 전당대회론으로 불붙자 박 대표는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군자삼고'(君子三苦.군자의 세가지 고통) 등의 사자성어를 내놓았다.

공교롭게도 당 쇄신특위의 쇄신안 발표와 박 대표의 취임 1년이 겹친 상황에서의 박 대표가 갖는 만감을 짐작케 한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