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미얀마 구호 등 `다중 위기' 대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오는 30일로 5년 임기의 꼭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준 반 총장은 힘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powerless and voiceless)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편에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유엔 수장의 고독과 국제사회에서 유엔이 갖는 한계, 사실상 아시아인 첫 사무총장으로서 서구적 가치와의 충돌, 은근한 인종주의 등 남모르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튀지 않고, 조용한 그의 외교 스타일은 가끔 `지도력 결핍'이라는 꼬집힘으로 돌아왔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실성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 지구촌에 몰아 닥친 `다중적 위기'(multiple crises)는 그였기에 이 정도라도 감당해 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 수치로 본 반 총장 활동 = 반 총장을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한 달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1월 1일 임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반 총장이 출장을 다닌 총 거리는 72만2천428 마일(116만2천635㎞)로 지구를 30바퀴 가량 돈 셈이 된다.

이 기간 장관급 이상과의 회담이 무려 880회에 달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총리급 이상 국가 정상과의 회담이었다고 유엔 측은 밝혔다.

유엔 직원들은 역대 어느 총장보다 잦은 출장을 다니고 회의를 주재하는 반 총장에게 혀를 내두른다.

문제가 발생한 지역이나, 각종 국제회의 현장이 그의 활동무대다.

국제사회 지도자들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고, 기업인, 시민사회 그리고 다양한 NGO 단체들을 만나 이해를 증진시키고 유엔과의 파트너십을 공고히하기 위해서다.

비근한 예로 지난 1월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으로 전화에 휩싸인 중동을 방문했을 때 그는 9일 동안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터키, 레바논, 가자 등을 잇따라 방문했고, 이스라엘은 두 차례나 찾아 `일방 휴전' 선언을 유도해 냈다.

이때 옮겨 다닌 국가와 준국가 단체만 9개였고 방문 도시는 13개에 달했다.

◇ 기후변화 이슈화 = 반 총장의 절반 임기에서 가장 소중한 업적은 뭐니뭐니 해도 기후변화 문제를 전 세계적 이슈로 끌어 올린 것이라는데 이견이 거의 없다.

2006년까지 불과 몇개 국가의 지도자들만이 이 문제를 제기하던 것이 2007년에는 80개국 정상들이 이 이슈에 동참했고, 오는 9월 `기후변화 서밋'에는 무려 100개국 이상의 정상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정적 계기는 2007년 12월 `발리 로드맵'. 온실가스 감축을 놓고 강대국들 간의 이견으로 거의 무산 지경에 이르렀던 이 회의에서 반 총장의 적극적 노력으로 로드맵이 만들어졌고, 결국 올해 말 코펜하겐에서 개최되는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 교토의정서 후속체제에 대한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그는 이 문제를 이슈화 하기 위해 지난해 남극을 다녀왔고, 올해는 북극을 방문해 직접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파괴 상황을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일 예정이다.

◇ 금융위기 대처 = 지난 4월 2일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이 국제 구제금융기금을 1조1천억 달러로 증액키로 결정한 데도 반 총장의 역할이 컸다.

금융위기 와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나라는 빈국이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을 통해 1조1천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를 주요국 정상들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당시 회의가 끝난 뒤 이명박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이번 회의에서 가장 수혜자는 반 총장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국제 현안 해결사 = 각종 분쟁지역을 누비며 평화와 안정, 인도적 참상을 해결하는 것도 반 총장의 몫이다.

세계 최악의 분쟁 지역으로 꼽힌 수단 다르푸르 사태부터 중동 가자전쟁, 미얀마의 사이클론 피해 대처 등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반 총장이 취임 초부터 실타래를 풀고자 주력한 다르푸르 사태에서는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설득하고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수단이 거부해왔던 유엔과 아프리카연합 혼성 평화유지군 파견이라는 진전을 이뤄냈다.

특히 지난해 5월 미얀마가 엄청난 사이클론 피해를 봤을 때 세계 50여개국으로부터 재해 복구 기부금을 모금하고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와 담판을 벌여 교착상태에 빠졌던 해외 구호인력 유입에 물꼬를 트는 등 외교적 역량을 과시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 총장은 지난해 6월 로마에서 열린 식량안보정상회의에서 글로벌 식량 수요를 감당하려면 2030년까지 식량 생산량을 50%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연간 150억∼20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면서 국제사회가 식량위기 해결을 위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 유엔 개혁 = 취임 초 그는 느슨한 유엔 조직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그는 고위간부들의 재산 공개, 윤리 강령 강화, 그리고 고위간부들과 사무총장 간 업무 계약(Compact) 체결 및 평가 등을 통해 고위직들의 책임성을 강화하는데 솔선수범했다.

또 내부 소청 및 조정 메커니즘 체계화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7월1일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철밥통'으로까지 불리는 유엔 직원들의 익숙해진 관습을 하루 아침에 뜯어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 반 총장에 대한 비판이 `개혁 저항' 세력인 유엔 내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혁신정책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반 총장은 2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십년간 익숙해진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이 쉽지않고 때로는 저항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유엔 직원들은 물론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 문제는 임기 내내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엔본부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