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숲 전문가 차윤정씨 "채우고 나눠주는 넉넉함…숲에서 삶의 지혜 배우죠"
"저기,제가 좋아하는 모감주나무가 꽃을 피웠네요. 보세요,얼마나 장하고 예쁜지.그 옆에 산사나무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는데 열매로 술을 담그면 맛있어요. 산사나무 잎은 또 얼마나 참하고 고상한 줄 아세요? 그러니 누가 제게 어떤 나무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참 답답해져요. 나무라면 뭐라도 다 좋은데 그중에서 어떻게 더 좋은 나무를 골라내겠어요?"

나무 앞에 선 '숲 박사'는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면서도 내내 나무 이야기를 그치지 않는다. 나무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지,우리가 나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으며 나무는 어떻게 그 상처를 안고 사는지,그래서 얼마나 측은한지 말이다. 그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지만 어떤 나무든 성한 구석이 없이 산다"며 안쓰러워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눈 앞의 벚나무만 해도 하늘소가 파고든 톱밥자국이 있고,가지치기의 상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산림생태학자 차윤정씨(43).1999년 남편 전승훈 교수(경원대 도시계획조경학부)와 함께 신갈나무의 일대기를 의인체 소설 형식으로 쓴 《신갈나무 투쟁기》(지성사)를 출간한 이후 《나무의 죽음》 《숲의 생활사》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다시 걷고 싶은 우리 숲》 《숲 생태학 강의》 등의 대중서를 잇달아 펴낸 산림생태학 대중화의 기수다. 뿐만 아니라 '숲 박사'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숲 해설가' 양성을 위한 숲 생태 전문강사로도 유명하다. 차씨를 서울 성수동의 서울숲에서 만나 숲 이야기를 나눠봤다.

▼언제부터 숲을 좋아했습니까.

"원래 어릴 때부터 숲에서 잘 놀았어요. 고향이 부산인데 초량동 산 몇 번지여서 산이 놀이터였죠."

▼그래서 숲을 전공하게 됐나요.

"그건 아니고요. 고3 때 교실 뒤 벽에 붙여 놓은 논 사진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농대 간다고 하다가 꽃보다는 나무가 스케일이 낫겠다며 임학과(서울대 85학번 · 현 산림자원학과)로 갔어요. 임학과 80년 역사에 여학생이 단 6명이었는데 저희 때는 한 학년에 여학생이 6명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숲 박사'니까 숲에 사는 식물에 대해서는 훤하시겠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저는 식물분류 전공이 아니라 그 정도까지는 안 되고요,중요한 나무들은 알지만 초본(草本)이나 관목류는 다 알지 못해요. 남편은 수목분류학 전공이라 4500여종을 다 알죠.늘 그 공부를 하니까 사진만 들이대도 알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생태학 전공이라 숲의 구조와 구성을 보면 전체의 맥락을 볼 수 있죠.토양이나 물이 지나는 것만 봐도 나무가 얼마나 자리를 가리는지 알 수 있고,숲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할 말이 많아져요. "

▼숲의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사람한테 가장 편안하고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숲이 있으면 그늘이 있어서 직사광선을 막아주고,최고 · 최저 기온이 너무 높거나 낮지 않게 해줍니다. 또 수분을 뿜어내 건조해지는 걸 막아주고 기화 과정에서 열을 빼앗아 가므로 온도를 낮춥니다. 아울러 그늘과 양지의 온도 차이로 인해 기압차가 생겨 바람이 불게 하죠."

차씨는 학부과정부터 박사과정까지 수목분류학,수목생리학,수목생태학을 공부해 숲에 관해 체계적인 지식을 갖췄다. 특히 박사과정 때 《신갈나무 투쟁기》를 쓴 후 여러 책을 쓰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2007년 《나무의 죽음》을 쓸 때는 논문 초록만 600개 이상 읽었다고 한다.

▼최근 숲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전공자로서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요.

"너무 많아서 걱정일 정도예요. 막연한 관심보다 숲을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고 더 찾으며 숲이 경이롭게 보이죠.하지만 '숲 해설가'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뭘 가르치겠다는 입장에서 공부하다 보니 걱정도 돼요. 너무 쉽게 전체를 이해하려고 덤비거나 흥미 위주 내지 단편적으로 공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

▼숲에 관한 대중적 안내서도 많이 쓰셨는데 책을 낸 후로 인기가 급상승했죠.

"숲에 관심 있는 분들은 책이나 강의로 저를 만나면 좋아하시죠.서울숲과 각 지방자치단체 · 시민단체 등에서 강의를 참 많이 했어요. 신록이 있는 4~5월에는 쉬는 날도 없이 오전 · 오후 강의를 잇달아서 하곤 했죠.저는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강의하는 걸 좋아해서 목이 아파요. 지금도 경원대 강의 외에 숲해설가협회,방송통신대 평생교육원 숲해설가 과정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다가도 정말 숲을 좋아해서 배우겠다는 분들이 부르면 어쩔 수 없이 또 강단에 서요. 딸이 고3이라 이젠 정말 좀 쉬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숲의 비밀 같은 것이 있나요?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잘못 알고 계신 것이 많아요. 가령 종의 다양성을 예로 들어볼까요. 생태계에서 환경조건이 일정하고 변화가 없으면 그 조건에 맞는 특수한 종이 새로 생겨요. 열대 생태계에 종이 많은 것은 일년 내내 고온다습한 환경이 유지되기 때문에 그 틈새에 맞는 희귀종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대지역에서는 기후변화가 심하므로 공통된 속성만 지키면서 비슷해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종수가 적어요. 따라서 종수뿐만 아니라 안정성도 함께 봐야 돼요. 가령 장수하늘소가 살려면 직경 40㎝ 이상의 서어나무 고목이 필요한데 숲이 망가져서 어린 나무만 있다면 장수하늘소는 살 수 없죠.그러면 천적인 오색딱따구리도 줄게 돼요. 그러니 숲의 안정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

▼재미있군요. 상식의 오류를 좀 더 들려주시죠.

"여기 꽃밭을 보세요. 개망초,앵초,개양귀비,카네이션 계통의 변종 등 많은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한자리에 섞여 있습니다. 꽃밭을 만들 때는 아마 자연스럽게 한다고 이렇게 했겠지만 이것이 자연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식물들은 같은 색,같은 크기끼리 군집을 이루기 때문이죠.자연스럽게 한다는 게 부자연을 낳은 것이죠.또 식물의 '브랜드 효과'라는 게 있는데 주목도를 높이려고 애쓰는 인간의 브랜드 전략과 달리 식물들은 군집 내 다른 종의 일반적 속성을 따라가는 것이 브랜드 전략입니다. 그래서 튀기보다는 무리 속에 숨어드는 게 식물의 브랜드 효과예요. 상수리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속'의 나무들은 있어도 참나무는 없다는 사실도 아는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

▼숲에서 배우는 자연의 이치랄까 삶의 지혜 같은 것도 있을 법합니다만.

"생태계는 우리가 우려하는 만큼 쉽게 망가지지는 않아요. 망가지더라도 스스로 복구하는 힘이 있죠.그래서 저는 산에서 열매를 따지 말라,꽃을 꺾지 말라는 식의 억압적 교육에 반대해요. 숲은 자기가 필요한 것 이상의 여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숲은 스스로의 힘으로 보호하고 성장하며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존재 그 자체로 강력하고 위대하며 뭇 생명에게 많은 것을 나눠주는 넉넉함이 숲에서 배우는 지혜가 아닐까 싶어요. "

▼녹색이 우리 시대의 '코드'가 된 느낌입니다.

"기업도 이익을 내는 것 외에 자연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녹색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녹색은 녹색들이 지킬 뿐 그게 모든 가치인 양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도용이나 오용도 싫고요. "

▼자연에 대해 보호 · 보존이냐 개발 · 활용이냐의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숲을 가꿀까,그냥 둘까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가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편하고 숲도 안정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연에 맡겨두기보다 개입하는 게 낫지요. 그러나 특정한 종(種)이 망가진다면 개발하면 안 되겠죠.문제는 이런 걸 두고 인류가 불필요한 갈등을 너무 많이 겪는다는 것입니다. 가령 환경근본주의랄까요,너무 유기농에 집착하고 친환경을 강조하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농약을 쓰고도 안 쓴 것처럼 하는 게 더 나쁘죠.실익 없는 논란보다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그것으로 지구적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 합니다. "

▼숲을 위해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사람만큼 이기적인 종은 없어요. 숲이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의 숲만 잘 보존됐어도 그들의 삶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숲이 없어 고통받는 제3세계 아이들을 다 구제하지는 못해도 관심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생태학은 나만,인간만이 아니라 다같이 잘살기 위한 학문입니다. 인류가 망가뜨린 생태계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신음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그래야 인류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

글=서화동/사진=정동헌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