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의원에게 수회 돈을 준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그러나 돈을 건넨 장소나 경위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설명해 변호인 측으로부터 "진술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거센 추궁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홍승면) 심리로 11일 열린 이 의원에 대한 공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박 전 회장은 "피고인에게 여러 차례 정치자금을 건넨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박 전 회장은 이어 2006년 8월 베트남 태광비나의 집무실에서 이 의원에게 5만달러를 건넨 경위에 대해 "3명의 일행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쇼핑백에 담긴 5만달러를 이 의원이 앉은 탁자에 두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쇼핑백을 놓은 위치를 탁자 위에서 밑으로 번복하는 등 말을 바꿔 변호인으로부터 "물어볼 때마다 말이 달라지는데 확실히 해달라"는 질책을 받았다. 변호인 측은 "쇼핑백을 두고 나왔다면 이 의원이 돈을 챙기는 것을 보지도 못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박 전 회장은 또 2006년 4월 서울의 한 호텔 식당에서 5만달러를 건넨 경위에 대해 "이 의원에게 돈이 든 봉투를 건넸으나 뿌리쳤다. 그래서 이 의원이 상의를 걸어놓은 식당 캐비닛 안에 봉투를 두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 전 회장은 이어 "2003년과 2004년 이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에도 선거자금이나 필요한 곳에 쓰라며 각각 2억원을 건넸으나 이 의원이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변호인 측은 "돈을 건넸다는 호텔의 층수가 몇층이냐.검찰이 알려준 것 아니냐"고 신문했다.

한편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에 대한 직접 신문에서 "2002년부터 수차례 돈을 건넸지만 그때마다 내가 뿌리치지 않았냐.나한테 이러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며 끝내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박 전 회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10억원 가까이 돈을 건네려 했지만 이 의원이 거절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런데도 결국 3회에 걸쳐 12만달러를 건넨 것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