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에게만 비용 절감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죠.올해는 제 앞으로 할당된 예산 중 절반만 쓰겠습니다. "

A 기업 B 대표이사는 최근 임직원들과 가진 대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접대비와 출장비,사무실 임대료,운전기사 인건비 등을 절감해 지난해 쓴 비용 대비 49.3%를 줄인다는 게 그가 제시한 목표다.

주요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씀씀이가 줄고 있다. 접대비와 출장비를 아끼는 것은 기본이다. 넓은 집무실과 전용 운전기사를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 전사적 비용 절감에 CEO들이 모범을 보이고 나섰다.

B 대표는 고객을 중요도에 따라 A,B,C등급으로 나누는 방법으로 접대비를 아끼고 있다. A급 손님은 예전처럼 호텔에서 대접하지만 B급과 C급은 각각 2만원짜리 식사,사무실 커피 한 잔으로 접대 수위를 낮췄다. 그는 "실제 고객들을 분류해 보니 A급은 20%밖에 안됐다"며 "손님 등급 나누기로 절감한 비용이 상당하다"고 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집무실 크기를 줄였다. 사무 공간이 좁은 LG트윈타워에서 CEO가 넓은 방을 차지하는 것은 임대료 낭비라고 본 것.운전기사는 고위 임원들이 같이 쓴다. 필요할 때마다 배차실에 연락해 기사를 배정받는다.

이석채 KT 회장은 취임 직후 CEO 집무실 공사를 새로 하겠다는 임원들의 보고에 불같이 화를 냈다. "불황을 극복하려면 겉멋 부리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이 회장은 전임자가 사용하던 집기류와 가구를 그대로 쓰고 있다.

출장과 접대의 거품도 빼기로 했다. 해외 출장시 이용하는 항공기의 좌석 등급을 퍼스트 클래스에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한 단계 낮췄다. 손님들과의 식사도 고급 음식점 대신 직원들이 자주 가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다.

구조적인 낭비요소들을 제거하는 작업도 이 회장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외 사업장 임원들과의 화상회의를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회의를 목적으로 한 출장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출장비를 절감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받았던 회의실 수를 줄여 남는 공간을 집무실로 쓰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임금을 반납한 CEO들도 있다. 최신원 SKC 회장은 최근 "전례 없는 경영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그동안 회사에서 제공했던 각종 혜택을 회장인 나부터 줄이겠다"며 급여 전액 반납을 선언했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황무수 현대삼호중공업 사장 등도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직원들과 약속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