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소리가 무엇일까?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현대인들은 자명종 소리가 가장 익숙할 것이다. 자명종 소리나 전자음 소리에 잠을 깨는 이런 현대인의 습성은 시계의 발명과 함께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루(현재의 종각 또는 보신각)가 있었다. 처음에는 물시계인 누수기에 담긴 물의 양이 말라감에 따라 나타나는 눈금을 읽어 종루에서 종을 쳤다. 눈으로 꼭 보아야 하는 물시계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세종 때 귀로 듣는 시계를 발명했는데,일정한 시각에 목인(나무로 만든 인형)들이 튀어나와 소리를 울려 시간을 알 수 있게 한 자격루였다. 세종 때부터 궐 안 자격루의 시간을 확인해 한양 사람들에게 종루의 종소리를 통해 시간을 알려 주었다.

당시 수도 한양은 북쪽의 백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남쪽의 목멱산 능선을 따라 만든 도성으로 둘러싸여 있었고,종루는 도성을 가로지르는 운종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종루는 대로 위로 크게 2층으로 지어져 아래로 우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했다 한다. 더구나 아침을 깨우는 '파루'가 33번 울리면 도성을 닫았던 사대문이 열리고,한양 사람들은 축복처럼 그 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날을 시작했던 것이다. 좀 과장한다면,큰 자명종 하나가 다른 종들을 깨우면서 한양 사람들 전부를 깨운 셈이다.

요즘은 종루의 종소리 하나로 서울 인구 전부를 깨울 수도 없고,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가정마다 몇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고,목적에 따라 몇 분 빠르게 혹은 느리게 맞추어 놓는 등 시간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신각 종이 1년에 한 번 새해의 기쁨을 나누는 공식적 행사의 도구로 전락하고,공공시계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서울시청에 내걸려 있던 시계 '바라'가 신청사 건축을 위해 떨어져나간 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공공시계가 점점 사라져가는 서울,왠지 구심점을 잃은 느낌은 없는가.

필자는 광화문에서 종각을 지날 때마다 우리 민족의 시간과 소리를 합치시키는 꿈을 꾸곤 한다. 지금처럼 빌딩 뒤로 물러나 있는 종각이 아니라,조선시대 모양을 본떠 대로 위로 크게 2층 혹은 그보다 높은 종루를 짓고,그 아래 자동차들이나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는 것이다. 종루에는 거대한 자격루를 설치해 목인(木人)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운종가의 종루처럼 잠들어 있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깨우는 상징적인 시계이자,저마다의 이기적인 시간을 공유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 심리적인 시계인 셈이다.

꿈을 더 꾸자면 서울 중심가에 위상 높은 종루를 세워,파리의 에펠탑이나 런던의 빅벤처럼 한국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자리매김토록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서울'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도 불타버리고 종루(종각)도 본래 역할을 거세당한 요즘,서울은 외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허허롭기 그지없다.

앞으로 우리는 과거의 기억이나 흔적을 파괴하는 크로노스의 시간(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과거의 문화와 정서를 복원해 현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의미가 담긴 시간)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수도에 필요한 것은 1년에 단 한 번 들어맞는 보신각 시간이 아니라,우리 삶과 함께 호흡하는 역사적인 산증인으로서의 시계인 것이다. 서울을 떠올리면 몸 안에 은은하게 종소리가 울리는 그런 시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