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1.6m,높이 2m짜리 대형 종이 앞에 배우가 서 있다. 목탄을 들고 6분 만에 쓱싹 그려내자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작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스케치가 완성된다. 그리고 화폭에 조명을 비추자 순식간에 화려한 색이 입혀진다. 일필휘지.마치 이 순간을 두고 만든 말인 것 같다. 엉뚱한 화가 김진규 감독이 11년간 개발한 그림 퍼포먼스 '드로잉쇼'가 대학로(옛 질러홀)에서 공연 중이다.

오직 상상력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드로잉쇼는 이게 '마술'인지 '미술'인지 착각하게 만든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라이브 드로잉은 매순간 예상을 뒤엎는다. 커다란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고 바나나 껍질을 문지르며 목탄을 비빈다.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수조에는 유화 물감을 띄운다. 유리판에는 순식간에 숭례문이 생기고 불이 붙어 타오른다. 이를 지켜보던 이순신 장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 관객들도 진지해진다. 3분 만에 폭포수 수묵화를 그리면 진짜 물이 쏟아져 나온다. 또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뿌리면 도심의 밤이 완성되고,빛과 야광으로 그려지는 바닷속 풍경을 만드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리는 과정이 바로 쇼가 되는 공연이다.

입소문을 타고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미 유명해진 작품.지난 1월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도 다녀왔다. '한국의 밤' 행사에서 5분 만에 찰리 채플린과 어린이들이 웃는 모습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3만원.(02)766-7848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