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9일 악덕 사채업의 대표적인 피해사례로 공개한 한 부녀(父女)의 비극은 충격을 넘어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여대생 A(23)씨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대부업체를 찾아간 것은 2007년 3월께.
서울 모 대학에 다니던 A씨는 등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백모(33)씨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서 300만원을 빌리면서 3개월간 매일 4만원씩, 360만원(이율 120% 적용)을 갚기로 했다.

A씨의 빚은 처음에 360만원으로 출발했지만 매일 일정액을 갚지 않으면 다시 원리금을 재대출하는 이른바 `꺾기' 방식이 적용되면서 1년 새 1천500만원으로 불어났다.

눈덩이처럼 커진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던 A씨는 유흥업소에 나가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협박을 받게 됐고, A씨는 결국 지난해 4월부터 `울며 겨자먹기'로 강남의 유흥업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백씨는 유흥업소 `마담'인 최모(41.여)씨와 짜고 A씨가 몸을 팔아 받은 `화대' 등으로 벌어들인 1천800만원을 빼앗았지만, A씨의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대부업자들은 마침내 A씨의 부모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려 딸의 빚을 대신 갚으라는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렵게 대학에 보낸 딸이 사채를 끌어다 쓴 것은 물론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A씨의 아버지는 충격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이틀 뒤에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자신도 평택의 한 저수지 인근에서 목을 맸다.

대부업자들은 A씨 외에도 돈을 빌린 A씨의 친구 2명을 비슷한 방법으로 유흥업소에 취업시켜 화대 등을 갈취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학교 친구 사이인 나머지 2명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려썼다고 진술했다"며 "업자들은 A씨가 돈을 빌릴 때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A씨가 죽은 뒤 빚을 대신 갚으라고 친구들에게 종용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2007년 3월부터 A씨 등 212명에게 연 120~680%의 고리로 돈을 빌려주고서 이자로 33억여원을 챙긴 혐의(대부업법 위반)로 백씨 등 모두 5명을 구속하고 대부업자 직원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