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 분쟁으로 유럽 전역이 유례없는 에너지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7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하면서 사태가 심상치 않은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루마니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등 중동부 유럽과 발칸 반도 국가 주요 도시는 난방이 끊겨 수만 명이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사태를 일으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런 고통에 귀를 막은 듯 연일 상호 비방전만 벌이고 있다.

협상 당사자인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과 우크라이나 국영 나프토가즈 모두 말로는 언제든지 협상 준비가 돼 있다고 언론에 흘리면서도 지난 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중단 선언 이후 실제 협상은 없었다.

러시아는 가스 채무를 이행하라는 목소리는 낮춘 채 우크라이나가 유럽으로 가는 자국 가스를 유용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도둑'으로까지 몰아세우고 있다.

지난 5일 유용한 만큼의 가스를 줄이겠다고 경고하기가 무섭게 이틀 만에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으로 가는 4개의 가스 루트 중 전날까지 3개를 막았고 이날 한 개를 추가로 막아 가스 대란이 일어났다면서 이번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기 위해 고의로 가스를 중단시킨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문제는 과연 언제쯤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며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점이다.

일단 양측은 지난해 12월 31일 최종 협상 결렬 이후 처음으로 8일 모스크바에서 만나 협상을 시도한다.

협상 의제는 크게 3가지다.

먼저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러시아에 갚기로 한 20억 달러 상당의 가스 채무다.

우크라이나는 이 중 15억 달러를 송금했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입금 확인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이 돈이 송금됐다고 하더라도 연체로 생긴 과징금(6억 1천400만 달러)이 남아있다.

금융위기에 돈이 마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이 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하나는 올해분 가스 가격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79.5달러(1천㎥당)에서 250달러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우크라이나는 201달러 이상은 안 되며 250달러를 받으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내는 가스 통과료도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가스 공급 중단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뻣뻣한 태도에 격분, 450달러까지 협상 가격을 인상했다.

따라서 양측이 공감할 만한 적정 금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협상 타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은 이번 가스 중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 가시적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당사자 간 계약에 근거한 책임 소재를 가려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양측은 스웨덴 스톡홀름 상사 중재법원에 상대방을 제소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서류 접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럽 국가들에 대한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극적인 타협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지난해 8월 그루지야와 전쟁으로 서방과 관계가 껄끄러웠던 러시아가 이번 일로 다시 서방과 관계가 악화되는 일을 원치 않고 있는데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려운 우크라이나도 더는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나프토가즈는 이날 우크라이나 일부 산업 소비자들에 가스 공급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비축해 둔 가스가 상당히 소진됐다는 의미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크라이나 경제가 초토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양측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애가 타는 것은 유럽연합(EU)이다.

가스 마찰과 관계없이 안정적 가스 공급을 약속했던 양국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가스 대란이 일면서 이번 사태를 양측의 상업 분쟁으로 치부하고 별 대응을 하지 않았던 EU에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게 생겼기 때문이다.

EU는 협상에 앞서 유럽 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이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율리아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총리와 직접 통화해 가스공급 정상화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EU는 오는 9일 브뤼셀에서 27개 회원국 에너지 소관부처 관계자와 업계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 '범유럽 에너지 긴급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