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일본은 여러모로 배울 게 많은 나라다. 잘한 일에서도 그렇고,잘못한 일에서도 그렇다.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경제불황을 맞아서도 일본은 우리에 참고서다. 가장 최근에,가장 긴 불황을,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했던 게 일본이다. 일본의 '10년 불황'을 되짚어 보면 '그래선 안 되겠다' 싶은 타산지석과,'이건 따라 할 만하다'는 벤치마킹 포인트가 고루 있다. 2009년 혹독한 불황의 해를 맞아 각오도 다질 겸 일본의 10년 불황을 다시 되돌아보자.

먼저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은 두 가지다. 첫째,뒷북 대책은 위기를 더 키운다는 것.일본은 1990년 거품붕괴가 시작된 뒤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금융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게 된 건 1997년 11월 당시 4대 증권사 중 하나였던 야마이치증권이 파산하고,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일본장기신용은행 일본채권신용은행 등이 줄줄이 쓰러진 다음이다. 그제야 부랴부랴 30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부실채권 정리에 나섰다. 좀더 일찍 대응했다면 10년 불황을 3~4년 정도 단축했을 것이란 게 일본의 후회다.

둘째,경기진작을 위해 돈을 풀려면 제대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2001년까지 무려 11차례에 걸쳐 135조엔의 재정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경기는 화끈하게 살아나지 않았다. 효과도 없는 곳에 돈을 쓴 탓이다. 대표적인 게 '상품권 살포' 같은 것이다. 1999년 '지역진흥권'이란 상품권 7000억엔어치를 전 국민에게 나눠줬지만 저축광인 일본인들에겐 소비진작 효과가 없었다는 게 분석 결과다. 당시 쓸데 없는 데 돈을 쓴 대가는 지금 800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정부 재정적자로 남아 있다.

벤치마킹할 점도 두 가지만 보자.첫째,경기회복엔 규제완화가 의외로 약효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가 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건 2002년 고이즈미 정권 출범이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세운 고이즈미 정권이 추진한 규제철폐는 민간을 움직이게 했다. 비효율적 공공기관의 민영화는 민간의 '경제할 의지'를 키웠고,수도권 규제완화 등 실질적 조치는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을 유턴시켰다. 규제완화야말로 돈 안드는 경기부양책이었다.

둘째,미래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은 기업들이 경기회복을 견인했다는 것.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3년간 연구 · 개발(R&D) 투자를 1~5% 정도 줄인 것 외엔 줄곧 R&D 투자를 늘려왔다.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된 것도 불황기에 하이브리드카 등에 꾸준히 투자했던 덕분이다. 도요타 샤프 교세라 등이 지금도 태양광 전지 등 미래 투자에 전력투구하는 것도 과거의 학습효과다.

역사는 반복된다. 거품붕괴와 불황-호황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앞이 캄캄해 보이지만,역사를 되새겨 보면 갈 길이 분명히 보인다. 이게 10년씩이나 불황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의 시행착오를 새해 벽두에 다시 따져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