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평 등 중고시장에 매물만 가득…리스ㆍ임시번호 차량 즐비

"불황 땐 중고차가 잘 팔린다고요? 요새는 생계형 노점상용 중고 트럭 하나 사러 오는 사람조차 없어요. "

25일 오후 서울 용답동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서 만난 매매상 문정길씨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장사가 더 안된다"며 "사러 오는 사람은 없고 팔려는 사람만 많아 차고가 넘쳐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는 매매상 10여명만 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을 뿐 손님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1000여평 남짓한 야외 전시장엔 반짝반짝 윤을 낸 중고차들이 빽빽이 주차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중고차 시장의 오랜 불문율로 통해 온 '불황 특수'가 사라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주가 폭락,환율 급등이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아 버린 탓이다. 신차 대신 저렴한 중고차를 찾는 손님과 노점용 트럭을 구하는 서민들이 몰리면서 중고차 시장이 '불황 속 호황'을 맞았던 1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장안평 시장엔 임시 번호판을 단 신차에 가까운 중고차와 '리스 승계 가능'이라고 써붙여진 수입차가 즐비했다. 매매상 김철곤씨는 "이달 초에 출시된 '뉴아반떼HD'는 새 차보다 150만원 저렴한 1400만원"이라며 "취득세와 등록세가 새 차의 60% 수준이라 할인폭은 더 커진다"면서 기자에게 구입을 권했다.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자 대리점 영업사원들이 중고차 시장에 내놓은 '밀어내기'용 신차들이다. 그는 하루 평균 30~40대의 '임판차'가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의전용으로 중ㆍ대형 수입차를 리스로 빌렸다가 리스비를 내지 못해 도중에 계약을 해지하고 중고차 시장으로 넘긴 리스 수입차도 많다. 매매상 서모씨는 "시가보다 최대 2000만원 정도 저렴하게 나온 리스 승계 차량도 있지만 사가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중고차 시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서울 율현동 중고차 시장 명인모터스에서 근무하는 조성식씨는 "중고차 10대 중 8대는 할부로 판매해 왔는데 최근 할부금융이 축소되면서 발길을 돌리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할부 고객이 줄면서 작년보다 매출이 80%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차 '모닝'에 붙던 웃돈도 사라졌다.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경차가 인기를 끌면서 신차 출고에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모닝 중고차는 신차 값에 50만~60만원의 웃돈을 얹어 줘야 살 수 있었다.

서울 가양동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일하는 김성근씨는 "얼마 전까지 모닝 마티즈 등 경차는 나오기가 무섭게 하루 만에 다 팔렸는데 요즘엔 평균 2주는 기다려야 주인을 찾는다"며 "중ㆍ대형차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경차도 판매가 20%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아반떼,SM3 등 준중형차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씨는 "아반떼,i30 같은 인기 준중형차는 들어오는 즉시 몇백 대를 사들여도 금세 다 팔렸는데 요즘엔 재고가 많이 쌓여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지난 여름 치솟았던 경유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아직까지 '찬밥' 신세다.

가양동 매매단지 오토라인의 김한도 과장은 "경유값이 올랐을 땐 SUV 차값이 400만원가량씩 빠졌었는데 유가가 정상화된 뒤에도 차값은 고작 70만원 정도 올랐고 판매량도 70% 수준밖에 회복이 안 됐다"고 말했다.

김미희 기자/김정환ㆍ정원하 인턴(한국외대) 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