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2008 베이징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인 올림픽스포츠센터 체육관.

임영철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브라질에 32-33, 1점 차로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이 선수촌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지칠 수도 있다.

금메달 기대에 따른 큰 부담도 몸이 무거워진 원인"이라며 패인을 분석했다.

선수촌에 돌아가 점심식사를 마친 뒤 임 감독은 오후 2시께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방문에는 '17시까지 깨우지 마시오'라고 쓰인 쪽지를 붙여 놓고 생각에 잠겼다.

'유럽의 강팀도 아닌데 브라질에 왜 이렇게 졌을까'라며 고민을 하면 할수록 해결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틀에 박힌 생활에 지친 선수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부담을 덜어줄 방법은 고된 훈련이 아니라 기분 전환이었다.

30분 만에 문을 열고 나온 임영철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베이징의 한국인 집단 거주지역인 왕징(望京)으로 떠났다.

사우나에 들어가 피로를 달래고 발 마사지까지 받은 선수들은 저녁 식사로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객고를 달랬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7일 저녁에 열린 헝가리와 조별리그 B조 최종전에서 한국은 역대전적에서 5승5패로 만만치 않던 동유럽의 강호 헝가리를 33-22, 무려 11점 차이로 대파했다.

선수들은 펄펄 날았다.

최고참인 센터백 오성옥(히포방크)은 예리한 패스와 힘찬 돌파, 정교한 슈팅을 선보이며 초반 리드를 이끌었고, 수문장 오영란(벽산건설)도 빛나는 선방으로 동료의 사기를 북돋웠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금메달리스트 홍정호(오므론)는 "우리 팀의 플레이에 점수를 매기기는 어렵지만 오늘처럼만 하면 목표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성옥도 "브라질전 직후 오영란과 홍정호까지 고참 3명이 모여 '다시 시작하자'는 다짐을 했고 방에만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았을 텐데 감독님이 시내 구경을 시켜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참 고마웠고 우리도 보답하자는 생각으로 했더니 내가 생각해도 깜짝 놀랄 만큼 너무 잘한 것 같다"고 거들었다.

오성옥은 이어 중국과 8강전에 대해서는 "어느 팀도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브라질전에서 깨달은 만큼 중국전도 마음 놓지 않고 열심히 준비해 두려움 없이 가겠다.

훈련 열심히 해온 만큼 이제 시작이라 여기고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베이징=연합뉴스) min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