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와 휘발유 제품값의 스프레드(가격차이)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좁혀지면서 비(非)산유국 정유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들어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와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휘발유제품의 가격차이는 1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본선인도가(FOB)로 수입하는 원유의 운송비와 정제비용을 감안하면 정유산업은 이미 '역(逆)마진' 시대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산업, '역마진'시대


1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제시장에서 거래된 8월 평균(15일까지) 휘발유 현물가는 배럴당 116.86달러로 같은 기간 두바이유 현물가(115.44)를 1.42달러 웃돌고 있다. 휘발유와 두바이유의 가격차이는 지난 6월까지 12~14달러 수준을 유지하다,7월 4달러대로 좁혀진 데 이어 8월 들어서는 1달러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세계적인 정유시설 증설붐으로 국제 휘발유가격이 꾸준히 하락한 데 따른 것.

3년 전과 비교해 두바이유가는 56.77달러에서 115.44달러로 뛴 데 반해 정제마진을 결정하는 휘발유-원유 간 가격차이는 16.61달러에서 1.41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전환,하반기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원유-휘발유제품의 가격차이가 1달러 수준으로 고착돼 '역마진폭'이 확대되면 대규모 영업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제반 비용을 감안해 최소마진을 확보하려면 국제 휘발유가격이 두바이유에 비해 20% 이상 높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체들은 지난 2분기 정제마진의 악화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같은 기간 휘발유 국제제품가와 두바이유의 가격차이는 12~14달러 수준이었다.

SK에너지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6.7% 증가한 12조1098억원,영업이익은 33.4% 증가한 532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분기의 매출 9조4492억원,영업이익 3991억원과 비교해도 각각 28.15%와 33.40% 늘어났다. GS칼텍스도 매출액(9조5251억원)과 영업이익(7659억원)이 각각 96%와 200% 증가했다. 에쓰오일은 2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80.3% 증가한 6조5318억원,영업이익은 116% 늘어난 7076억원을 기록했다.

정유업체들이 수출 증가와 고도화 시설의 본격 가동 덕분에 2분기까지는 좋은 실적을 보였으나 휘발유제품과 두바이유 간 가격차이가 좁혀지면서 하반기 실적전망은 불투명해졌다.


◆고도화 시설, '화수분'은 옛말


휘발유제품가의 하락과 맞물려 벙커C유가 이상 급등하면서 정유회사의 '크래킹마진(벙커C유를 휘발유 등 경질유로 정제한 마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크래킹마진을 결정하는 휘발유-벙커C유 간 가격차이는 지난 6월(평균) 배럴당 40.73달러에서 8월 들어 12.40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정유회사의 '화수분' 역할을 했던 고도화 시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국내외 정유업체들의 잇단 고도화 시설 증설추진 등으로 벙커C유 수요가 늘어난 게 주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 정유회사의 한 최고경영자는 "휘발유와 벙커C유의 가격차이가 20달러 이하를 유지하면 굳이 수조원을 들여 고도화 시설을 지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휘발유-벙커C유 간 가격차이가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국내 정유업체들의 고도화 시설 투자계획이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도화 비율(전체 설비에서 고도화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4.5%인 SK에너지는 2조원의 추가 투자계획을 확정했다. GS칼텍스도 3조원을 추가 투자,고도화 비율을 현재 22.5%에서 39.1%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