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원 구성도 못한 채 장기간 헛돌고 있는 가운데 의원의 법안 제출은 오히려 예년보다 늘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17일 현재 국회에 등록된 의원 발의 법안은 무려 635건. 법안 제출이 가장 많았던 17대 국회 같은 기간의 270여건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초선들이 발의한 법안은 250여건에 달한다.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초선들이 이렇게 많은 법안을 제출한 전례가 없다"며 "서로 경쟁하듯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같은 현상은 입법실적을 올려 의정활동에서 일찌감치 좋은 평가를 받겠다는 '신참 의원들'의 의욕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법안 발의 건수로 의원을 평가하는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이색법안'주목받고픈 초선들

제출된 법안 가운데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색 법안'들도 눈에 띈다.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은 민법상 성인의 연령기준을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추는 민법 개정안을 제출해놓고 있다. 통상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만 19세부터 각종 매매계약과 재산권 행사가 가능토록 하고,건축사법ㆍ공인노무사법 등에 따른 자격증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김소남 한나라당 의원은 임대주택의 일정비율 이상을 고령자 임대주택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고령자 주거 안정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안형환 의원은 자동차보험 만료일이 공휴일일 경우 다음날 가입하더라도 과태료(현행 300만원 이하)를 물지 않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곽정숙 민노당 의원은 최근 환자수가 급증하고 있는 A형 간염에 대한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윤상현 한나라당 의원은 차량에 불법 경음기(클랙슨)를 장착할 경우 벌칙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담배 광고를 연 60회에서 10회로 제한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며,같은 당 이학재 의원은 추석ㆍ설 등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는 내용의 '유료도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폐기 법안 재활용ㆍ표절도

17대 국회에서 이미 폐기된 법안을 고스란히 베끼거나 정부 입법안을 대리 제출하는 등의 편법 사례도 없지 않다. 홍장표 한나라당 의원은 국경일을 공휴일로 정하도록 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17대 국회에서 임인배 의원이 제출했던 법안 내용과 똑같다. 17대 임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비서관이 18대 들어 홍 의원실로 옮기면서 당시 만든 법안을 그대로 다시 제출했다는 후문이다.

박대해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같은 당 허천 의원이 17대 때 발의한 법안을 그대로 제출한 것이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