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벌써 네번째 메달 도전이네요"

한국 남자핸드볼 대표팀의 레프트백 윤경신(35.두산)은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데 이어 쿠웨이트에 출전권을 빼앗겼던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제외하고 한 차례도 올림픽 대표팀에서 빠진 적이 없다.

고려고에 다니던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대표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윤경신은 경희대 입학 첫 해인 1991년 핸드볼큰잔치 신인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1993년부터 3년 연속으로 핸드볼큰잔치 득점왕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특급 골잡이로 이름을 날린 윤경신은 하지만 핸드볼이 만년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을 떠나 세계 최고 리그인 독일 프로핸드볼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올랐다.

경희대를 졸업한 1996년 분데스리가 굼머스바흐로 진출한 윤경신은 여섯 시즌 연속에 통산 7차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타고난 '득점기계'였다.

203㎝의 큰 키를 이용해 고공에서 꽂는 슈팅은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라도 막기 힘들었다.

2001년에는 국제핸드볼연맹(IHF)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선수임을 인정받기도 했다.

2년 전 굼머스바흐를 떠나 함부르크로 이적한 뒤에는 팀을 유럽핸드볼연맹(UHF)컵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12년 독일 생활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현역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다.

남자 실업 두산과 계약했고 모교인 경희대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학업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처럼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특급 스타로 군림했지만 윤경신은 올림픽 메달과 거리가 멀었다.

항상 한국 남자핸드볼을 대표하는 주포로 맹활약했지만 대표팀의 전력은 매번 유럽의 벽을 넘기 힘들었다.

첫 올림픽 출전 이후 16년이 지나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윤경신은 나선다.

19살이었던 바르셀로나 대회 때나 35살로 노장이 된 지금이나 윤경신은 변함없이 한국의 득점을 책임지는 골잡이다.

하지만 윤경신의 올림픽 메달 도전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2012년 런던 대회는 포기하고 베이징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윤경신에게 베이징 대회는 특별하다.

못 이룬 올림픽 메달의 꿈을 현실로 만들 마지막 기회다.

다행스럽게 이번에는 메달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자신을 비롯한 조치효(바링겐), 백원철(다이도스틸), 강일구(인천도시개발공사) 등 노장들이 건재한 데다 중간층인 이재우(다이도스틸), 윤경민(하나은행), 김태완(하나은행), 이태영(코로사), 박찬용(인천도시개발공사) 등의 실력도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정수영(코로사), 정의경(두산), 고경수(하나은행) 등 신예들이 놀라울 정도로 기량이 급성장했다.

윤경신은 지난달 초 태릉선수촌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올림픽에 대비한 훈련을 시작했다.

나이도 있지만 워낙 힘들기로 소문난 핸드볼 대표팀 훈련을 소화하느라 오랜만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윤경신은 "정말 힘들다. 생생한 후배들과 똑같이 훈련하려니 체력이 달리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마지막 올림픽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