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조퇴 허락을 받은 뒤 회사 탈의실에서 역기에 목이 눌려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A씨(사망 당시 41세)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한 원심을 깨고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가스충전소에서 일하던 A씨는 2004년 12월 어느 날 오후 6시20분께 직원 탈의실에서 역기대에 잠을 자는 것처럼 반듯이 누운 자세로 30㎏짜리 역기에 목 부분이 눌려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A씨의 숨진 자세나 상처, 문이 잠겨있던 현장 상황 등에 비춰 역기가 왜 목을 눌렀는지 모르지만 타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고 전날 술을 많이 마신 A씨는 출근시간을 2시간 가량 넘긴 오전 10시30분께 회사에 나왔으나 소장에게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하겠다"고 말한 뒤 사무실에서 나갔다.

동료직원이 점심시간에 A씨가 역기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봤지만 잠이 든 줄 알고 지나쳤다.

A씨가 사망하자 부모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보상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고 공단 측이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1ㆍ2심 재판부는 "휴게시간 중 사업장 내 시설에서 근로자가 부상한 경우 그 행위가 근로자의 본래 업무 행위 또는 준비ㆍ정리 행위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거나 행위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ㆍ관리 하에 있다고 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가 역기를 탈의실에 갖다놨지만 전 직원이 이용했기에 사업장 내 시설로서 사업주의 지배ㆍ관리하에 있었고 A씨가 역기 운동을 한 것은 가스배달 및 충전 업무 수행을 위한 체력유지 보강 활동의 일환으로 업무의 준비행위로 보인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조퇴 허락을 받고 사무실에서 나간 뒤 집에 가지 않고 탈의실에서 쉬었다고 해도 업무에 복귀하려 했다는 의사를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근로시간 도중 주어지는 `휴게시간'에 발생한 사고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