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2일 삼성은 조용했다.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조중웅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된 이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피고인 8명이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출석했지만,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일체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번 재판이 전략기획실 해체 후 조직운영 방향에 미칠 영향, 국민여론,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타격 등을 예의주시하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표면적으로는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철저하게 `낮은 자세'를 견지했다.

우선 13년만에 법정에 출석한 이 회장부터 몸을 낮췄다.

이 회장은 대기업 총수로서의 의전과 경호 인력을 단 한명도 대동하지 않은 채 변호인과 단출하게 법정에 출석해 "(국민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라고 짧게 소감을 밝히고 이내 말문을 닫았다.

그룹 관계자는 "차분하게 몸을 낮춰서 재판에 임하겠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삼성은 이처럼 대외적으로는 차분하고 낮은 자세로 총수의 형사재판 출석에 대처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날 선 작두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특히 재판 진행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국민들의 시선이 삼성의 경영권 불법승계, 차명계좌 운영 등의 문제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또 삼성그룹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얼마나 타격을 줄 것인지 등이 그룹관계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대목이다.

이날 재판정에 임직원들은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대신 몇몇 홍보 책임자들이 참석한 것만 봐도 삼성이 이번 재판이 여론과 그룹 이미지에 미칠 영향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 지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그룹의 다른 관계자는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회사 분위기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그룹의 총수가 형사재판을 받는 모습이 전세계 매스컴에 보도되는 것 자체가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만, 이조차도 말을 꺼내기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계열사의 한 관계자도 "재판 진행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변호인을 단일창구로 하고 있고 회사 내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자제하는 분위기여서 계열사에는 재판 관련된 소식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그룹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달 말 해체를 앞둔 전략기획실의 마지막 업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재판의 추이가 그동안 전략기획실에서 해왔던 업무의 재조정 등 조직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삼성측은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룹 관계자는 "재판과 조직내 역할 배분 문제는 직접 관련이 없다"며 "두가지 문제는 완전히 별개"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