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고 전수 검사를 실시한다" "연령 확인이 불가능한 광우병 위험물질은 돌려 보낸다",

정부와 여당이 최근 미국산 쇠고기 비난 여론에 밀려 내놓은 이 같은 검역 보완책들은 대부분 지난달 18일 타결된 합의문에는 없거나 상충하는 것들이다.

이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등의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실제 상황이 발생해 우리 정부가 실천에 나설 경우 미국과의 통상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다.

◇ 美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 지난 7일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농해수위 미 쇠고기 청문회에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시 중단하겠다.

통상 마찰이 발생해도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합의문 4, 5조는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추가 발생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 변경을 인정할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분명히 수입 중단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정부가 곧장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는 없고, OIE가 현재 '광우병위험통제국'인 미국의 광우병 위험 관련 지위를 낮출 경우에만 수입을 중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의 전신인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규정을 원용하면 수입 중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GATT 20조 b항에서는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적용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필요한 조치'에는 수입.교역 중단이 포함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8일 한승수 총리가 미국 쇠고기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직후 질의 과정에서 "국민 건강에 위협이 있을 때 수입교역 중단 등 (통상의) 예외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고시에 넣는 등) 다른 특별한 장치가 필요없이 정당한 비준과 국내 절차 거쳐 발효시킨 국제법(GATT)은 국내법과 동등하게 발효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내 광우병이 없는 현 시점에서는 우리 정부의 이런 방침에 미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로 광우병 사태가 터져 한국이 대국민 약속대로 수입을 중단할 경우 미국측은 즉각 위생조건 위반을 주장하며 협의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의문 25조는 '양국 정부는 본 위생조건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해 상대방과 협의를 요청할 수 있고, 협의는 요청받은 영토 안에서 요청일로부터 7일 이내 개최돼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미국내 광우병 발병 가능성이 낮을 뿐더러, 발생해도 일단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한 뒤 미국측의 요청에 따라 협의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미국과 EU가 '성장호르몬 쇠고기 수입 규제'를 놓고 수 년간 재판을 벌였듯, 국제법상 통상 분쟁으로 비화될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 美 광우병 발생시 전수 검사 = 전수 검사 부분은 수입 중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실행에 큰 문제가 없다.

두 나라가 맺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수입 가능한 부위.연령, 수출 작업장 지정 권한 및 절차, 광우병위험물질(SRM) 발견시 작업장 규제 조치 등을 담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수입국이 어떤 방법, 어떤 수준의 검역을 통해 조건 위반 사실을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까지 우리나라가 X-레이 이물질 검출기를 동원, 미국산 쇠고기를 전수 검사하며 수 밀리미터(㎜) 단위의 뼛조각까지 찾아낸 것도 위생조건이 아니라 내부 검역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구체적 수입 검역 방법은 우리의 재량권, 검역주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광우병이 발생하면 전수조사를 시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내부 검역 지침에 반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같은 전수 조사가 평상시에도 진행된다면, 미국측은 이를 자유로운 쇠고기 교역을 막는 행위로 간주하고 지난해 초 뼛조각 사태 당시와 마찬가지로 협의를 요청해 올 가능성이 있다.

검역 당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3%에 대해 현물 검사, 즉 실제로 상자를 뜯어 이상 유무를 살피는 검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특히 내장 등 특정위험물질(SRM) 포함 가능성이 높은 부위를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 SRM 연령표시 없으면 반송 = 아울러 당정은 앞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 가운데 광우병위험물질(SRM)의 경우 월령 확인이 불가능하면 모두 검역 불합격 판정과 함께 돌려보내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는 수입위생조건을 우리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 케이스다.

이번 합의문 22조에 따르면 미국 수의당국이 발행하는 수출검역증에는 품명(축종 포함).수량.도축장.도축기간 등이 표시되지만, 연령표시 항목은 의무 사항에서 빠졌다.

다만 부칙에서 T-본 및 포터하우스 스테이크의 경우 양국이 고시 발효 후 180일까지는 월령을 표시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미국은 180일 이후 수출검역증명서에 SRM을 포함해 어떤 경우라도 월령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모든 월령 소의 편도.회장원위부(소장 끝), 30개월령 이상 소의 뇌.눈.척수.머리뼈.등뼈'로 규정된 SRM을 수입하지 않는다는 위생조건을 근거로, 어떤 SRM의 연령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금수 품목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검역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예를 들어 30개월 미만에서는 허용된 척수를 꼭 우리나라에 팔고 싶다면 미국측이 알아서 30개월 미만임을 표시해 오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검역 조치에 미국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등뼈는 미국내에서 30개월 이상과 미만이 스프레이 표시로 구분되고 있고, 나머지 SRM은 실제 교역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판단에서다.

또 미국측이 수출검역서상 표시 항목에 '연령'을 넣지 않은 목적이 실제 교역에서 30개월 이상 SRM을 편하게 팔기 위해서라기보다 OIE 원칙을 관철시킨다는 '명분' 때문이었고, 위생조건에 이 부분을 관철시킨 이상 실제 미미한 양의 SRM 반송 여부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