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일산경찰서 방문에 경찰청장 배제 `의미심장'

최근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강력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는 가운데 경찰이 `딴 짓'에 신경을 쓰느라 치안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경찰의 업무 행태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 주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전국 교수모임에 참여한 교수들에 대한 `성향 파악'과 `동향 조사'를 벌여 물의를 빚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대 교수들을, 대전 서부경찰서는 모임 상임집행위원장인 목원대 교수를 상대로 모임 결성 경위와 배경 등을 캐물었고 한남대, 부천대 등 전국 대학에서 독재정권 시대의 `학원사찰'을 연상케 하는 이런 행위가 `정보 수집' 명목으로 벌어졌다.

지난 주에는 또 경찰이 경호 명목으로 정보·형사과 형사들을 야당 정치인들의 유세장에 잇따라 보내 뒤를 따르도록 했다가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호 차원이라면 당연히 경비과 직원들이 붙어야 하는데 왜 엉뚱하게 정보·형사 담당자들이 동행하느냐는 것이 `유세 사찰'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의 지적이다.

경찰은 이런 활동들에 정치 개입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총선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게 돼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전시 행정'도 최근 경찰의 치안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사건이 알려진 다음날인 31일 오전 일선 경찰서 형사·수사과장과 생활안전과장들을 청사 대회의실로 불러 모아 `실종사건 수사 전담팀' 발족식을 열었다.

과거에 발생했던 실종사건을 전면 재수사한다는 것이 경찰이 밝힌 전담팀 발족의 이유지만 자세히 보면 실속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규 인력이 투입되거나 전문 수사 인력이 보충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최근 3년간 아동·부녀자 실종사건 중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것만 다시 수사한다는 것이어서 획기적 재수사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굳이 발족식을 열기 위해 일선서 과장들을 불러 모은 것은 `전시행정'의 발로 아니냐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안양 초등학생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붙잡힌 후 경찰이 "국내 모든 휴대전화에 위성항법장치(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모듈 장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비판이 일었다.

사실상 야외에서만 사용 가능한 기술 특성상 효과가 의문시되고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큰데다가 경찰이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제대로 협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방안을 발표하는 바람에 결국 휴대전화용 GPS 모듈 업체들의 주가를 폭등시킨 것 말고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불법 시위 엄단' 방침을 밝혀 온 경찰은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했다가 오히려 `비폭력 합법 집회에 대한 과잉 대응'이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경찰이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안양 초등학생 살해사건, 창전동 네 모녀 살해 사건,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 등에 대한 대응 미숙이 잇따라 지적되자 경찰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분위기다.

서울 시내 경찰서에 근무하는 한 경정은 "요즘 워낙 사건이 많이 터져서 시끄럽다 보니 위에서 지시사항과 대책이 계속 새로 내려온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표현했다.

다른 경찰서에 근무하는 또 다른 경정급 간부는 "일선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의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일산경찰서를 방문하면서 어청수 경찰청장을 동행토록 하지 않은 데 대해 경찰 안팎에서는 `사실상 어 청장에 대한 공개적 질책'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이날 아침부터 타부처 업무보고에서 경찰의 안이한 태도를 공개적으로 꾸짖은 데 이어 현장 방문 수행단에 경찰청장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어 청장은 이날 이 대통령 현장 방문 후 따로 일산경찰서를 찾아 수사 상황을 점검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