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내 간판 여성 정치인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민주당 후보경선의 승패를 좌우할 슈퍼대의원 문제를 둘러싼 불화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의 여성 미국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는 라이벌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누르려면 796명에 달하는 슈퍼대의원 확보에서 앞서야 한다.

지역별로 실시되는 경선투표에서는 오바마의 승리가 확실하기 때문에 힐러리가 남은 지역 경선을 다 이긴다 해도 선출 대의원 수에서는 오바마에게 100명 이상 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힐러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연직인 슈퍼대의원 표대결에서 앞서는 것 뿐이다.

민주당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전직 대통령 등 당간부들로 구성된 796명의 슈퍼대의원은 선출직인 일반대의원과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후보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펠로시가 '슈퍼대의원들은 지역별 경선 투표결과에 따라 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역별 경선투표에서 오바마가 앞서면 슈퍼대의원들은 오바마를 택해야 하고, 힐러리가 앞서면 힐러리를 뽑아야 한다고 방송을 통해 공언했다.

유권자들의 표심과 다른 후보를 선택한다면, 민주당은 11월 대선에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펠로시의 주장이다.

남은 경선투표에서 오바마의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펠로시의 말은 슈퍼대의원들도 오바마를 지지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힐러리측 지지자들이 이 같은 펠로시의 주장을 수용할 리 없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26일 펠로시에게 서한을 보내 '슈퍼대의원들이 지역별 경선 투표 결과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민주당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슈퍼대의원들은 경선 투표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지지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게 당규라고 강조했다.

힐러리도 이날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슈퍼대의원은 물론, 경선 투표로 선출된 일반대의원들 조차도 지지 후보를 마음대로 고를 권리가 있다고 펠로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로시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지역별 경선에서 이긴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돼야 하고, 슈퍼대의원들도 경선 투표 승자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펠로시는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원의장인 그의 입장은 민주당 내 후보경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의 입장이 힐러리에게 불리하다면, 두 사람간의 불화는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