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 산하 대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중국 통신장비제조업체 화웨이그룹과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의 통신장비업체 스리콤 인수안을 불허했다.이번 결정은 '보호주의' 논란을 다시 촉발시키며 세계 경제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대외투자심의위원회가 스리콤 매각을 불허키로 했다"며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보호주의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중국 화웨이,스리콤 인수 좌절

화웨이는 지난해 10월 베인캐피털과 손잡고 미국의 스리콤을 22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당시엔 베인캐피털이 80% 이상,화웨이는 20% 이하를 출자키로 했다.하지만 2대 주주인 화웨이가 지분을 21.5%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 정부와 의회의 반발에 부딪쳤다.

스리콤이 미국 국방부에 보안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통신ㆍ네트워크 업체여서 안보 관련 기술과 정보가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스리콤을 중국 화웨이에 넘기는 것은 미국 안보에 대한 공격을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매코터 미국 하원 의원)는 주장이 먹혀든 셈이다.

이번 결정은 '미국 정부가 비논리적인 이유를 대며 중국의 미국 투자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중국을 더욱 자극할 전망이다.2005년에도 중국해양석유(CNOOC)의 미 석유회사 유노칼 인수가 좌절된 바 있어 앙금이 깊은 상태다.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제시 왕 부사장은 최근 "미국이 화웨이의 스리콤 인수를 막을 경우 (CIC는) 미국 투자를 아예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위기에 빠진 씨티그룹에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던 중국개발은행(CDB)이 마음을 돌려 투자계획을 철회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

FT는 "투자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대선 국면을 맞아 확산되고 있는 미국 경제 보수주의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미국 정부와 대선 주자들이 '제노포비아(xenophobiaㆍ외국인 기피증)' 성향이 강해진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보호주의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설문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물론 자유무역을 신봉했던 공화당 지지자들마저 급격히 보호주의 지지로 돌아서는 추세다.공화당 지지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59%가 '자유무역이 미국 경제에 해가 된다'고 응답했다.'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비율은 32%에 그쳤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민주당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최근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자동차와 쇠고기 등 무역 핵심산업 보호와 환경과 노동 등 신 통상정책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노(No)라고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국수주의 성향이 높아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세계 증권가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는 최근 FT 기고문을 통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인 경기 후퇴로 이어지는 와중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과 같은 정치적 긴장이 조성되면 글로벌 경제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며 "이것이 (금융위기보다) 더 큰 위험"이라고 주장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