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두 상원의원이 치열한 접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탁월한 대중연설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해온 오바마가 다른 정치인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16일 밤 오바마의 위스콘신주 밀워키 연설.
오바마는 경험은 없으면서 말만 화려하게 늘어놓는다는 힐러리 진영의 비판을 겨냥해 몇마디 말이 미국을 변화시키는데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역설했다.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나에겐 꿈이 있다'는 명언도 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진리로 믿는다' 역시 말이다.

'두려움 말고는 두려워할 것이라곤 없다' 이것도 말이요 연설일 뿐이다"라고 오바마는 강조해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오바마의 이 연설이 2006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나서 당선된 드벌 패트릭 현 주지사가 그 해 10월 15일 행한 연설 내용과 똑같다는 점이다.

오바마의 친구인 패트릭 주지사도 당시 선거 막바지에 말만 잘한다는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오바마와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힐러리 진영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나치지 않고 오바마와 패트릭 주지사의 연설 장면을 동영상으로 유포시키면서, 오바마가 연설을 표절했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채 다른 사람의 연설을 표절한 것은 원래 연설을 한 사람에게 잘못일 뿐 아니라 연설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맹렬히 공격했다.

오바마 진영도 즉각 반격에 나서 힐러리도 오바마의 연설을 가져다 썼다고 공박했다.

오바마측은 우선 패트릭 주지사의 말임을 밝혔다면 좋았겠지만, 오바마와 패트릭 주지사는 서로 이념과 언어를 공유하는 친구로서 서로의 말을 나눠 사용하곤 한다고 강조했다.

패트릭 주지사도 자신의 2006년 선거 때 경험을 살려 오바마에게 똑같은 연설을 하라고 권고했다고 공개했다.

오바마 진영은 나아가 힐러리가 "힘이 넘친다.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등 오바마가 먼저 했던 말들을 뒤늦게 연설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힐러리의 연설 기록 사례들을 제시했다.

오바마와 힐러리 양측이 이처럼 연설 표절 문제를 놓고 첨예한 공방전을 펼치는 것은 표절을 금기시하는 미국 문화에서 이번 사태는 자칫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다 중도 포기한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은 1988년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 출마했다 당시 영국 노동당 지도자였던 닐 케녹의 연설을 부분 표절한게 두고 두고 타격이 됐다.

조그마한 돌출변수에도 판세가 좌우될 수 있을 정도로 살얼음 접전을 벌이고 있는 힐러리와 오바마에게 '연설 표절' 논란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