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밟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타계로 뉴질랜드는 우상을 잃었다.

뉴질랜드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어른'이 어느 맑은 여름날 아침 홀연히 역사 속으로 퇴장해버린 것이다.

11일 오전 88세를 일기로 힐러리 경이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급보로 전해지자 뉴질랜드인들은 커다란 슬픔에 빠졌다.

유럽을 방문 중이던 헬렌 클라크 총리는 서둘러 애도 성명을 발표했고, 각급 관공서는 건물에 조기를 내걸었다.

하이네켄 테니스 대회가 진행 중이던 경기장에서는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힐러리 경를 추모하는 묵념이 실시됐으며 아오카이 마운트 쿡 빌리지에 있는 힐러리 경 동상 앞에는 시민들이 바친 조화가 수북이 쌓여갔다.

뉴질랜드 정부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힐러리 경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의사당 건물과 해외 공관들에 조문록도 비치했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에서 현직 총리나 총독이 아닌 인사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힐러리 경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오히려 법규나 통상적인 관례에 얽매여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시민들의 반응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가졌던 공직은 인도 주재 고등 판무관이 전부였지만 그가 살았던 삶은 어떤 뉴질랜드인의 삶보다 위대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한 방송은 뉴질랜드가 우상을 잃었다며 그의 퇴장에 아쉬움을 표시했고, 어떤 신문은 힐러리 경이야말로 전체 뉴질랜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힐러리 경이 마음만 먹었다면 총리도 될 수 있었고, 총독도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마다하고 산악인으로서, 북극과 남극을 탐험한 탐험가로서, 네팔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준 자선사업가로, 평생을 도전과 봉사에 헌신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 단번에 세계적인 명사가 됐지만 항상 자신을 낮추어 보통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삶의 자세 때문에 뉴질랜드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매년 여론조사를 하면 뉴질랜드에서 가장 존경받은 인물 첫 자리에는 그가 올랐다.

5 달러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가게 된 것도 그런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직선적이며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지가 비범하게 굳센 사람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스스로 보통사람이고 밝히는 그의 삶이 위대하게 된 것도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도전과 봉사의 삶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처럼 굳센 의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지난 1975년 네팔에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기 위한 히말라야 재단 일로 카트만두에 함께 갔던 부인과 막내딸이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으나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사업을 위해 활발하게 모금 활동을 하고 종종 현지를 방문해 주민들을 격려하는 사랑을 실천했다.

그런 박애주의와 봉사 정신이 지구의 지붕위에 우뚝 섰던 33세 뉴질랜드 청년의 삶을 뉴질랜드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우뚝 서 있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힐러리 경이 없는 뉴질랜드는 확실히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벌써부터 나온다.

(오클랜드<뉴질랜드>연합뉴스) 고한성 통신원 ko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