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평화번영선언'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하면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한반도 지역 개최를 거론한 점이 주목된다.

북·미 관계개선과 더불어 이처럼 종전 선언의 개념이 확립됨에 따라 한반도 평화 논의에 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남북은 선언문 4항에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종전과 평화를 선언하기 위한 선결 과제인 비핵화를 앞당길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3자는 남북한과 미국을,4자는 남북한과 미국·중국을 포함한 것을 뜻한다.

정부 당국자는 "남과 북이 평화체제의 당사자라는 것을 북한이 인정한 것"이라며 "평화 논의가 진일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1953년 휴전선언은 미국·유엔·중국의 군 당국과 한 것이기 때문에 종전 역시 북·미 양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종전 선언의 주체,남과 북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단독 회담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의 직접 당사자는 남과 북이 돼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면서 미국과 중국도 평화체제 문제를 다룰 준비가 돼 있음을 집중적으로 전했다고 정부 대표단이 전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호주 시드니에서 노 대통령과 회담 후 "한국전쟁을 종결시켜야 하고 종결시킬 수 있다.

나의 목적은 한국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에 김정일 위원장 등과 서명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내 뜻을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핵폐기는 하는데 6자회담에서 풀자고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정리됐다"고 말했다.

이어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을 설명하니 김 위원장이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하면서 성사시키도록 남측이 노력해보라고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3,4자 정상회담 단기 실현 힘들 듯

정부 당국자는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추진 방안에 대해 "그런 방향성을 갖고 남은 임기동안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두 달 남짓 남은 노 대통령의 임기 안에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뜻이다.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3개국 또는 4개국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는 있지만 핵폐기가 이뤄지기 전엔 종전선언까지 나가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핵폐기 전단계인 시설 불능화와 프로그램 신고를 연내 완료하는 대로 핵폐기 협상을 시작해 내년 중 완료한다는 게 목표다.

비핵화가 이상적으로 진행될 경우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의 성사는 일러도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평화체제에 대한 다른 시각

남북이 종전선언의 주체를 3~4개국으로 압축했으나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양자 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는 증거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96년 북한에 평화체제 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한 4자회담 구상을 처음 제안한 이래 '4자틀'을 지지하고 있다.

양국이 중국을 포함시키려는 이유는 중국이 휴전의 당사자였고,북·미 간 양자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북한은 1996년부터 줄곧 중국을 뺀 3자구도를 지향해왔다.

북한은 종전 선언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보다는 그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제재 철회와 경제 지원에 관심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북한은 종전 협상의 참가 대상국을 제한하고 싶어하는 차이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반도 평화체제에는 비핵화,종전선언,군사적 신뢰구축 등 세 가지의 큰 틀이 있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이 중 군사적 신뢰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포함한 좁은 의미의 평화체제에 있어서는 남북 정상 간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평양=공동취재단/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