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의 인상착의에 의한 범인 식별 절차에 있어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켜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신빙성이 낮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작년 7월 대전의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최모씨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최씨의 대문을 들어와서는 미리 준비한 도구 등을 이용해 출입문도 부쉈다.

그 순간 외출을 나갔다 들어오는 최씨가 도둑을 발견했다.

최씨는 범인을 붙잡는 과정에서 3주간의 상해를 입었다.

도둑이 도망치자, 최씨는 뒤따라가지 않고 경찰에 신고한 뒤 인상착의 등을 설명했다.

경찰은 범죄장소 부근을 순찰하다가 범인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손모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는 최씨와 대면케 했다.

최씨는 손씨를 보는 순간, 범인이 맞다고 주장했으나 손씨는 줄곧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했다.

단지 탄산음료를 사기 위해 가게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체포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최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손씨를 범인으로 판단해 기소했고, 대법원 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상해 및 주거침입 등으로 기소된 손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켜 범인 여부를 확인케 하는 것은 그 용의자가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든지, 피해자 진술 외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없는 한 신빙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구체적인 상황에서 용의자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이유로 들며, 신빙성을 높게 하려면 목격자의 진술이나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한 뒤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대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해 현관출입문을 부수고 때마침 들어온 피해자와 격투를 벌이면서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고 도주한 사람이 피고인이라는 점에 관한 피해자 겸 목격자인 최씨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은 그 신빙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taejong7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