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奇和 < 전남대 교수·경제학부 >

왕정이 민주주의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러에 따르면 왕정은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나 내각 책임제에 비해 나름대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권력의 승계가 큰 논란 없이 이루어질 수 있고,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 최소한의 동의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신속한 의사결정이라는 왕정의 장점은 오늘날에도 일부 유지되고 있다. 외부의 침략이 임박하다고 여기면 대통령이나 수상은 의회의 동의 없이 일정기간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 아직도 국왕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국왕들은 국익을 위한 외교활동을 비롯해 사회통합을 위한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외부 상황이 수시로 달라져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기업의 결정과정은 민주주의보다 왕정에 가깝다.

왕정의 장점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건 권력 남용 가능성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집단을 약탈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따라서 자원에 대한 재산권을 누가 어떤 내용으로 가질 것인가,또는 누가 얼마만큼의 조세를 부담할 것인가 등의 규칙을 정하는 데는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재정 지출을 필요로 하는 정책을 정할 때 납세자에게만 투표권을 줬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확대는 불가피하게 비효율성을 초래하기도 한다.

경제정책에 따른 경제적 부담과 수혜의 불일치가 유권자들로 하여금 기회주의적 행위를 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유권자는 경제정책의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이익은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비효율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더라도 자신에게 조그만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이러한 정책에 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적으로 배제된 집단을 여전히 약탈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다수의 지지라는 합법을 가장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20%의 부를 약탈하여 80%에게 나누어주는 정책이 서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쉽게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재산권과 경제적 권리는 쉽게 침해되고,시장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창의를 발휘하여 기술을 혁신하며 위험한 사업에 투자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얻기 위한 절차로 전락하면 정치집단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쉽게 편가르기를 하고,이익집단과 적극적인 담합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면 선거는 사생결단식 투쟁장이 되고 만다.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해 수도 이전을 꾀할 수 있고,사회의 주류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길 만큼 정부의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것은 우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가능성은 낮겠지만 전쟁이나 정상회담 등의 외교문제를 국익보다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권력 장악을 위해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가 집단간의 투쟁 수단으로 전락하고 이를 불안하게 여기는 개인들이 늘어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할 수 있게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전에 비해 훨씬 치열한 사생결단식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의 편 가르기에서 촉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해서,사회통합 및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국가권력을 제한해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게 시급하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결국 민주주의에서 개인을 지킬 수 있는 건 유권자 자신의 선택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고 자유와 재산권,작은 정부의 실현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작된 이미지나 부정적인 과거의 폭로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누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할 수 있는지,누가 작은 정부의 실현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