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입에서 `평창' 대신 `소치'가 호명되자 과테말라시티 내 홀리데이인 호텔 상황실에서 마음을 졸이며 TV 스크린을 지켜보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은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데다 결선 투표로 갈 경우 유럽표 흡수로 러시아 소치보다 다소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던 터라 그 상실감은 더했다.

유치 도시 발표 직후 `성공 문서' 대신 빈 손으로 유치위 프레스센터에 들어선 한승수 유치위원장,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김진선 강원지사는 국민, 특히 강원도민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으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한승수 위원장은 잠긴 목소리로 "평창이 가장 잘 준비된 동계올림픽 개최지라 생각했고, 프레젠테이션(PT)도 생각만큼 잘해 좋은 결과를 기대했는데, 기대에 부응 못해 송구할 따름"이라고 자책했다.

김정길 위원장도 "평창이 유치됐더라면 우리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동계종목 발전의 계기가 됐을텐데 IOC가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지사는 "정말 죄송하고 면목없다는 말 밖에 드릴 수 없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 온 사람으로서 무한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러시아가 동계올림픽 금메달 수 만해도 3등 안에 든다.

거기에 러시아라는 무게감이 더해져 먹힌 것 같다"며 "우린 이제 시작하는 나라"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유치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직접 원정 응원을 온 340여명의 강원도민과 과테말라 현지 교민들도 허탈감에 빠졌다.

강원도민과 현지 교민 등 1천여명은 IOC의 발표를 앞둔 2시간 전부터 발표장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옆 올림픽 거리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자리를 잡고, 태극기와 막대풍선 등을 흔들며 2002년 월드컵경기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열띤 `거리응원'으로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던 러시아 응원단을 주눅들게 했다.

과테말라시티 시민들까지 교민들과 어우러져 `평창'과 `코레아'를 외쳐 이 곳이 과테말라가 아니라 한국땅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러시아 소치가 최종 결정되는 순간 장내는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마저 들렸다.

이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멍한 듯 단상에서 자축하고 있는 러시아 대표단만을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었다.

평창에서 직접 응원을 나왔다는 전찬기씨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와 할 말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휴가까지 내며 원정왔다는 강릉경찰서 오정희 경사는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평창이 확정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왔다.

최종 발표 전까지만 해도 2표차로 이겼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 평창 군민은 "강원도의 10년 발전을 앞당길 기회를 날려버렸다.

강대국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며 IOC에 대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4년 전 과테말라로 이민을 왔다는 교민 이부용(49.여)씨는 "오늘을 기다리며 1년 전부터 유치기원 체육대회를 하며 기대했는데 허무하다"면서도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고생이 너무 많았다.

우린 그저 됐으면 태극기라도 흔들려고 나왔는데.."라며 원정응원단을 위로했다.

흉물이 되어 더 이상 쓸모가 없을 줄 알았던 올림픽거리의 러시아 천막 아이스링크는 러시아 대표단의 축제의 장으로 변해 한국민의 마음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과테말라시티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