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중심론 용도폐기될 듯..통합논의 원점 회귀


범여 대선전략 수정 불가피..한 대세론 굳어지나


범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던 정운찬(鄭雲燦) 전 서울대총장이 30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범여권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지난 1월16일 고 건(高 建)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에 이어 이날 정 전 총장까지 본격적인 대선가도에 들어서기도 전에 중도 포기함으로써 범여권으로서는 유력한 외부주자 2명을 잃었다.

충남 공주 출신의 경제.교육 전문가로서 호남-충청 연대를 통한 서부벨트 복원의 적임자로 꼽혔던 정 전 총장의 낙마는 고 전 총리의 불출마 때보다 충격파가 한층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범여권 내에서 다각도로 진행중이던 대통합 논의가 일단 중단되고 범여권 제 정파가 추진중인 정치권 새 판짜기는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최근까지 범여권에서 거론되던 `후보중심 신당론', `제3지대 신당론', `대선후보 연석회의' 등 갖가지 형태의 후보중심 통합 논의들이 모두 정 전 총장의 참여를 `상수(常數)'로 놓고 검토돼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등 지도부가 추진해온 `후보중심 신당론'은 동력을 잃고 용도 폐기될 가능성이 커졌고, 정대철 상임고문 등 우리당 일각과 시민사회세력에서 거론돼온 대선주자 연석회의 구성 및 제3지대 신당 창당도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통합신당 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후보자 연석회의에 기대를 걸었는데 한 축인 정 전 총장이 빠지면서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워졌다"면서 "후보자 중심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난감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합신당 논의를 중단할 수는 없다.

헤쳐모여를 할 수도 있고 민주당과 소통합을 한 뒤 대통합의 경로를 거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에서는 지금까지도 대권후보 중심 통합 논의가 있는데 이 것이 얼마나 잘못됐고 위험한 것인 지 오늘 또 한번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범여권이 그동안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후보중심 통합론을 접고 이념과 정책, 지역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재편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임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정 전 총장 외에도 손학규 전 경기지사, 열린우리당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 범여권의 잠재적 주자군은 많고, 후보중심 통합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 정세균 의장은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직후 "(대선후보) 원탁회의 대상은 한 분만은 아니니까 다른 잠재력 있는 분들과 새로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후보 중심 통합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초래될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범여권 대선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정 전 총장이 낮은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불구, 대선주자로서의 높은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호남-충청 연합을 성사시킬 수 있는 상징성이었다.

결국 정 전 총장의 중도포기로 범여권은 대(對)한나라당 대선 전략의 콘셉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4.25 재보선으로 잠시 흔들렸던 한나라당 대세론을 다시 확산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인사들은 "정 전 총장이 포기했다고 해서 범여권 통합의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정 전 총장에게 내심 기대를 걸었던 범여권 지지층들의 실망감이 커지면서 한나라당 쏠림 현상으로 귀결되고, 이는 다시 한나라당내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 두 주자간 경쟁을 가열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