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업 은퇴연금 제도(고령농 생활안정지원금)를 새로 도입키로 하는 등 농촌에 대한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대책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농림부는 생산성이 낮은 고령농의 은퇴를 유도하기 위해 농지를 처분하는 농민에게 내년부터 2014년까지 은퇴연금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기획예산처와 구체적인 협의를 벌이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농어촌의 형편은 더 나아지겠지만 예산 부담은 늘어나 세금 증가가 우려되는 데다 도시 영세민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2014년까지 농업 은퇴연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 은퇴연금의 대상은 65세 이상 고령농이다.

내년부터 2014년까지 65세 이상 농민이 농지를 처분하고 은퇴를 신청할 경우 농지 1ha(약 3000평)당 월 24만1000원을 지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농지를 팔아 매각 대금을 챙기고 매달 연금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령농으로서는 은퇴할 만하다.

문제는 '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70세 이상 농가는 31만1000가구다.

이들은 내년부터 은퇴연금이 도입되면 즉각적으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농가당 평균 1.3ha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모두 '은퇴'를 신청한다면 연간 9000억원씩 예산이 들어가게 된다.

세대주가 60세부터 69세인 농가는 43만가구인데,이들 중 64세 이상은 내년에 은퇴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돈을 받을 수 있다.

대체로 25만명 정도가 내년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58세 이상인 농민은 2014년 전까지 65세에 도달하기 때문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119조원 농촌예산 확대 계획

농민에 대한 현금성 지원 대책은 이것만이 아니다.

농림부는 쌀에 대한 소득보전 직불제를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밭농업과 과수 축산 등에도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만큼 현금을 소득보전 직불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농림부는 이를 위해 119조원의 농어촌 투융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 불필요한 예산을 돌려 쓰는 동시에 예산 규모도 늘려나가기로 했다.

농촌 예산 119조원은 정부가 2003년 11월에 발표한 것으로 농업 개방 파고에 직면한 농촌을 지원하기 위해 10년간 쓰기로 한 돈이다.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과 FTA 추진 등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됐던 것인데,한·미 FTA를 계기로 이 돈을 다시 늘리겠다는 것이 농림부의 구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농가소득·경영안정에 3조313억원 △농촌개발·복지증진 1조2289억원 △농업체질 강화 3조3408억원 △농산물 유통혁신 7242억원 △산림자원 육성 7763억원 △농업생산 기반 조성 1조9557억원 등 모두 11조572억원을 투입하는 등 2003년 이후 매년 예산을 늘여왔다.


◆시장개방 때마다 선물(?)

정부는 농업시장을 개방할 때마다 농민을 의식해 농업 예산을 늘려 주는 '선물'을 줘왔다.

1994년 발효된 우루과이라운드(UR)를 앞두고 42조원의 농어촌구조개선 예산(1992~98년)과 15조원의 농특세 자금을 농어촌에 투입했다.

또 한·칠레 FTA와 쌀시장 재개방(2004년 협상 마무리)을 앞두고 119조원의 투융자 계획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얼마가 늘어날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또 다시 농촌에 선물을 주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문제는 거듭된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농촌의 살림살이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는데도 농민단체 등 이해집단의 요구는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구당 농가소득은 지난해 3230만원으로 3년 전(2688만원)에 비해 20.2% 늘었다.

이 중 논농업 직불제와 농어민 연금 등 공적보조금은 276만원으로 3년 전(139만원)에 비해 98.6%나 증가했다.

정부의 각종 지원금 등으로 농가소득이 상당부분 늘어난 셈이다.

농가소득은 전국 가구 평균 소득과 비교하면 87.7%로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전국 평균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농촌 지역의 물가가 싼 데다 60세 이상 고령농 비율이 많고,야채와 과일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생활 수준이 도시근로자에 비해 낮다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FTA 발효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상을 전혀 안 할 수야 없겠지만 더 이상 퍼주기 식은 곤란하다"며 "일본처럼 유기농 위주,품질 위주의 경영 지원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조정을 하는 데 예산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