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 중개사, 감정평가원 직원 및 사장, 재력있는 건물 매수자 등 `1인 4역'을 소화하는 성대모사 능력으로 억대의 부동산 중개 사기를 저지른 30대와 그 일당이 검찰에 기소됐다.

28일 검찰에 따르면 김모(31)씨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실무지식을 이용해 가짜 공인중개 영업을 하기로 하고 공범 3명을 끌어 모았다.

이들은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 사무실을 차린 뒤 여러 대의 `대포폰'을 개설해 놓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부동산을 매도할 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물을 팔겠다는 고객이 처음 걸려든 것은 작년 2월.
김씨는 우선 서울 강남의 ○○부동산 업자 행세를 하며 고객 이모씨에게 "한 의사 분이 건물을 사겠다고 한다.

90억원에 팔아주려면 감정평가액이 85억원 가량은 나와야 한다"고 말한 뒤 `잘 아는' 감정평가원 전화번호를 소개해줬다.

그러나 이씨가 감정평가원으로 알고 전화한 번호는 김씨의 또 다른 대포폰이었다.

김씨는 "XX감정평가원 김△△입니다.

사장님을 바꿔 드리겠다"며 직원처럼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목소리를 바꿔 사장 행세를 했다.

그는 이씨에게 "해당 건물은 78억원 정도로 평가되지만 85억원까지 해 줄테니 비용을 송금하라"고 말했고 나흘 뒤 이씨가 송금한 25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튿날 이씨의 전화를 받은 김씨는 다시 부동산 업자 목소리로 "감정평가서를 받으려면 3천만원이 필요한데 절반은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속여 1천500만원을 또 받았다.

하루 뒤 김씨는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의사 행세를 하며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부동산을 사게 돼 고맙다.

계약 때 감정서를 지참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며칠 뒤 중개업자 목소리로 "인장을 찍는 데 비용이 더 필요하다"며 이씨에게 2천만원을 추가로 받아 내기도 했다.

김씨가 이런 수법으로 같은해 6월까지 5명의 피해자들로부터 가로챈 돈은 1억8천여만원.
김씨는 목소리를 바꿔 1인 4역을 해가며 피해자들을 속였고 공범들은 이른바 `대포 통장'을 만들고 송금된 돈을 인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김씨와 공범 2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전화번호부에서 피해자들을 물색하는 역할을 했던 또 다른 공범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