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없다" 여론몰이..`정치공작' 의혹 제기

"15년 마신 우물에 침을 뱉고 나갔다", "단물 빨아먹은 뒤 등에 칼 을 꽂고 나갔다", "대권을 위해 말 갈아타면서 무슨 명분이냐".

한나라당은 20일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의 전날 탈당선언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격한 단어와 인신공격성 표현을 동원해 비판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손 전 지사가 탈당의 변에서 한나라당을 구태정치의 온상이자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정당으로 폄훼한데 대해선 "배신감을 넘어 인간적 자괴감까지 느낀다"며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손학규 때리기'에 본격 나선 것은 `믿었던' 손 전 지사가 탈당한 데 대한 배신감뿐만 아니라 초기에 `싹'을 자르지 않을 경우 '대권 3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즉, 범여권의 `손학규 띄우기'에 맞서 그의 탈당에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부상(浮上) 가능성 자체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김형오(金炯旿)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명분도, 납득할 이유도 없으며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면서 "한나라당에서 장관, 경기지사 한 분이 떠나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등에 칼을 찌르고 나온 데 대해 참으로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지도자들의 말로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군정의 잔당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가 주인행사를 한다고 했는 데 그게 누구인지 손 전 지사는 오늘 중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심재철(沈在哲) 홍보기획본부장은 "`내가 주인이고 강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분이 열흘 만에 말을 뒤집고 왜 나갔느냐. 손 전 지사 발언은 열흘도 못 가는 `손언십일변'인 것 같다"면서 "손 전 지사는 국민의 싸늘한 시선만 받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성조(金晟祚) 전략기획본부장은 "대권욕심만을 위해 정치 도의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하늘은 대권을 주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고, 전재희(全在姬) 정책위의장은 "주인공이 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진정 정치지도자의 길임을 밤새 생각했다"며 우회비판했다.

유기준(兪奇濬)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상황이 불리하면 탈당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정치의 전형이다.

15년 동안 먹던 우물 물에 침을 뱉는 비신사적 행위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사무처 노조는 성명을 내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위선을 과감히 던져버리라"며 손 전 지사의 정계은퇴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또 손 전 지사가 `말바꾸기'와 '식언(食言)'을 통해 당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손 전 지사는 지난해 11월 6일 동아시아미래지단 초청 특강에서 "손학규가 한나라당의 미래를 대표한다"고 했고, 12월12일 미래포럼 조찬강연회에서는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당을 변화시키고 당이 대한민국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범여권행설과 관련, 지난 1월17일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벽돌도 아닌데 어떻게 빼서 (여권 후보로) 넣겠느냐"고 부인했고, 2월7일 성균관대 특강에서는 "내 입을 보지 말고 행적을 보라. 내가 어떻게 한나라당을 지켜왔고 자랑스럽게 걸어왔는 지 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는 지난 9일 한나라당 필승전진대회 등에서 "더 큰 한나라당을 만들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으나 결국 지난 14일 봉은사 법회 축사를 통해 "결정이 어려우면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고 했다"며 탈당을 시사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범 여권의 `손학규 편들기' 및 `한나라당 때리기'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손 전 지사의 탈당에는 국민적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범여권의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즉각 환호작약하고 나서는 태도야말로 공작정치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성조 본부장은 "천정배(千正培) 의원이 `한나라당은 3공과 5공의 후예들이 남는 야당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손 전 지사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범여권후보 영입을 위해 야당 후보를 빼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공작정치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측과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 측은 손 전 지사의 탈당 책임론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 전 시장측 진수희(陳壽姬) 의원이 전날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손 전 지사의 주장과 거리가 있다고 보이는 경선 룰 `6월-4만명'안을 고수했던 분이 누구냐"며 박 전 대표측을 겨냥했고 이에 대해 이혜훈(李惠薰) 의원은 20일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이 전 시장측이 끝까지 7월을 고집하다 이런 사태가 난 것 아니겠느냐"고 맞섰다.

한편 한나라당은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어수선해진 당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금주를 `천막당사 정신을 기리는 주간'으로 정하고 이번주 최고위원회와 주요당직자 회의를 염창동 당사에 보관된 천막당사 시절의 컨테이너에서 열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