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에게 '석궁 피습'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뒤 대법원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대법원은 사건 당일인 15일 긴급심야확대간부회의,16일 비상대책회의를 잇따라 개최했고 19일에는 긴급 전국법원장회의까지 열기로 했다.

그동안 판결에 불만을 품은 소송당사자들이 소란을 피우기는 했지만 담당 판사를 집앞에서 직접 공격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법원의 충격은 컸다.

게다가 이날 법원 등기소장이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휘두른 흉기에 다치는 사건까지 발생해 위기의식은 배가되는 듯하다.

대법원이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도 이 같은 위기의식이 담겨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법원 안팎 및 법관 신변에 대한 위해요소를 총체적으로 재점검,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키로 했다.

사실 현직 고법부장 판사가 수뢰혐의로 사법처리되고,'10원이라도 탈세했으면 직을 버리겠다'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비록 세무사 측의 실수이긴 하지만 2000만원을 탈루한 사실이 밝혀져 뒤늦게 내는 등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이번 사건을 촉발했을 수도 있다.

이날 회의에서도 '사법부 스스로 돌아볼 점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교수의 행위는 어떠한 정당성도 확보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김 전 교수는 대학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데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며 억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입시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때문이 아니라 학교 측으로부터 학생 생활지도 능력,교원으로서 품위유지 등에서 평균 이하 점수를 받은 점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상대방이 있는 소송사건에서 진 쪽이 판결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테러를 가해 법치주의를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법부가 법치의 최후 보루라는 점에서 당사자들이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아쉽기만 하다.

정태웅 사회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