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비리' 후 재판 불복 극단 치달아

판결에 불만을 품은 소송 당사자가 재판장을 석궁으로 쏴 부상을 입힌 사건이 터지면서 과거 법관 피습 사례와 법관신변보호 대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15일 일선 법원 등에 따르면 법관을 직접 흉기 등으로 다치게 한 사례는 10여 년 만이다.

1997년 8월에는 정신병력이 있던 강모씨가 이완용 후손의 재산권 소송 승소와 전두환씨 사면 소문에 불만을 품고, 수원지법 성남지원 지원장실에 난입해 지원장의 팔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지원장이 충격을 못 이겨 법복을 벗었다.

2004년 9월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씨가 재판을 빨리 끝내주지 않는 재판부에 항의하며 법대(法臺)로 뛰어들다 법정 경위에 의해 가까스로 저지되는 일도 있었다.

이듬해에는 부산지법에서 재판 진행에 불만을 품은 40대 여성이 담당 판사실을 찾아가 판사에게 욕설을 하며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법정 난동 차원을 떠나 법정 밖에서 재판 이해 당사자가 법관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한 사례는 처음이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판이 끝난 뒤 피고인이나 피해자측 방청객들이 법정을 빠져나가며 재판부와 검찰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말만 듣고 피해자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측 가족들의 불만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말 일심회 사건 첫 공판에서는 피고인 입ㆍ퇴장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던 방청객에 감치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사법부 안팎에서는 지난해 7월 조관행 당시 고법 부장판사 등 법조계 인사들이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이 불거진 뒤 커지기 시작한 법원에 대한 불신이 극단적 양상으로 표출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법조 비리 파문이 불거질 무렵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민사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양측 당사자를 불러 조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쪽 당사자가 갑자기 "재판을 못 믿겠다.

재판부를 신뢰할 수 없다."라며 거세게 항의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과거의 경우 1952년 5월 부산지법이 육군 대위를 사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모 의원을 국회 결의에 따라 석방하자 시위대가 법원으로 몰려와 "담당 판사를 죽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판사의 하숙집을 피습한 사례가, 1958년 7월에는 서울지법이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씨에게 징역 5년과 일부 무죄를 선고하자 시위대가 `친공 판사'를 규탄한다며 법원에 난입한 사례가 있었다.

1988년 11월에는 서울형사지법에서 방청객들이 법정 소란을 일으키고 판결문을 훼손한 사례가, 1989년 6월에는 광주지법에 대학생들이 난입해 청사와 차량에 화염병을 던지고 유리창을 파손한 사례가 있었다.

심지어 건국 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부인이 1950년 6ㆍ25 전쟁 중 고위 법조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북한 공산당원에 의해 살해된 사례가 있었으며 살해범은 1952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돼 집행됐다.

이런 재판 불복 분위기는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2천700여만원의 세금을 탈루했고, 조관행 전 부장판사에게 전별금을 줬다는 의혹을 사는 등 사법부 수장이 공격을 받는 사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법원은 2005년 서울 소재 법원에서 피고인인 남편이 증인선서를 하는 부인을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트리는 사건이 벌어지자 지난해 초 법정경위와 청원 경찰, 방호원 등으로 구성된 경비관리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판사실이나 퇴근 길 등 법정 밖에서 일어나는 테러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나 장관급인 대법관에게는 관용차가 지급되지만 석궁에 피습당한 박 부장판사처럼 차하위급의 경우는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법원행정처는 장윤기 처장 주재로 이날 밤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신변 보호 대책이 없다는 점 때문에 대응 방안을 내놓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 중견 판사는 "사법부의 노력을 말하기에는 너무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풍토를 시급히 조성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임주영 기자 minor@yna.co.kr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