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들까지 가세…한 달 한 번꼴 충돌

법원과 검찰의 충돌이 한 달에 한번 꼴로 잦아지면서 감정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과거에도 영장 기각 문제를 놓고 판ㆍ검사가 종종 신경전을 벌였으나 당사자 수준에서 그쳤으나 최근엔 양측 수장까지 가세해 기관간 `밥그릇싸움' 양상을 띠면서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로 자부해온 일선 판ㆍ검사들이 막말을 쏟아내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불구속 수사를 무작정 확대할 경우 피해자 인권 보호는 요원해진다는 입장인데 반해 법원은 인신구속부터 해놓고 샅샅이 뒤지는 편의주의적 수사는 더 이상 안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느냐는 집단이기주의 심리가 반영돼 있다는 게 법조계 주변의 시각이다.

◇ 잦아지는 '극한대립'

검찰이 론스타 미국 본사의 엘레스 쇼트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법률이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당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재청구한 것은 불만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법원과 검찰은 지난 달에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검찰과 변호사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두고 격한 설전을 벌였다.

이 대법원장의 유감 표명으로 사태는 일단 봉합됐지만 검찰은 내심 "조서를 던져버리라"는 모욕을 당하고도 명분과 대세에 밀려 반격조차 제대로 못해 판정패한 격이었다.

검찰은 게임비리 의혹을 수사하면서 뇌물을 주거나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상품권 업자나 공무원 등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나 계좌 압수수색 영장 등을 잇따라 법원이 기각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한 반응을 감추지 않고 있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금품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판ㆍ검사나 공무원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김씨의 진술과 다이어리가 증거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법원에서 판단돼 줄줄이 무죄나 선고유예 등이 선고된 점도 검찰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올해 8~9월 법조 비리 수사 때 판사들이 코너에 몰렸으나 막상 공이 법원으로 넘어오자 역공을 가하는 형국이다.

법원은 수사 당시 조관행 고법 부장판사의 5년치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되자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시점의 2년치로 제한했으나 검찰이 재청구하자 곱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다시 5년치 수색을 허용하는 '수모'를 당했다.

◇ 거칠어지는 설전

과거에도 영장 기각이나 영장실질심사를 둘러싼 양측의 다툼은 늘 있었다.

2001년에는 서울지법 남부지원 박모 부장판사가 새로운 증거나 사정 변경이 없는 검찰의 형식적 구속영장 재청구는 심리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라며 사상 초유의 '각하' 결정을 내려 파문을 낳았다.

형사소송법에 한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피의자에 대해 영장을 재청구하려면 새로운 혐의나 증거가 드러나거나 도주 시도 등 구속할 만한 사정 변경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을 들어 검찰의 형식적인 영장 재청구 관행을 문제 삼았다.

예전엔 대립각이 커지면 양측 수장이 나서 사태를 수습했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1997년 윤 관 대법원장을 취임 인사차 찾아가 영장실질심사제와 관련해 서로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 뒤 대검에 갈등 조장행위를 일체 금지하라고 지시했고, 같은 해 3월 판ㆍ검사들이 영장심사를 둘러싸고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다는 소문이 돌 때 안강민 서울지검장은 정지형 서울지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화해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최근엔 장외에서 수장이 싸움을 지휘하고 일선에서 독설(毒舌) 수준의 설전이 오가는 것이 특징.
이 대법원장은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다"고 했고,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받은 조서와 수사 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고 했으며 정상명 검찰총장은 "듣기에 민망한 표현"이라고 맞받았다.

일선 판ㆍ검사들의 비난의 수위는 더 높았다.

론스타 본사 경영진에 대한 체포ㆍ구속영장이 한꺼번에 기각된 뒤 검찰에서는 "코미디", "남의 장사에 소금이 아니라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 결국은 주도권 싸움

1996년 영장실질심사제가 도입되고 2005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공판주의를 중심으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검찰에 집중됐던 사법 주도권은 급속히 빠지기 시작했다.

이들 제도가 법원의 기능과 피고인의 방어권, 법정 증언 등을 강화하는 대신 검찰의 조사 관행에 제동을 걸고 조서의 증거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법원은 영장 기각 사유가 인신구속 또는 계좌 압수수색 영장도 불구속 수사나 별건 영장 청구 불허 등의 원칙에 기초한 것으로, 최근 기각된 영장이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즉, 원활한 수사를 위한 인신구속이 피의자 인권에 우선하는 게 아니고, 예컨대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기 등의 혐의로 신병부터 확보하는 것도 안되며, 증거를 찾기 위해 '사돈의 팔촌'의 계좌나 통화기록까지 보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검찰 수사 관행에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법원이 영장으로 수사를 지휘하고, 나아가 '방해'하고 있다며 피의자 인권 강화도 좋고 절차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결국 사건 피해자나 국가,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배경에는 위증 처벌을 위한 사법방해죄나 판사들의 재량을 제한하는 양형기준법 등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식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할 경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권한은 완전히 법원으로 넘어간다는 검찰의 위기의식과 법원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조바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 기자 key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