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현대시학'으로 문단에 나온 김은정 시인이 등단 10년 만에 첫 시집 '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천년의시작)를 펴냈다.

전통과 현대가 겹쳐 있고 명확함과 난해함이 교차하는 김씨의 시는 까다로워 읽기가 수월치 않다.

그래서 독자들이 시를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세영 시인이 "상상력이 참신하고 묘사력 또한 남다르다.

대체로 그의 모든 시에서 언어의 통제력과 형식적 완결성 또한 보통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고 평했듯 그의 시가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시집에는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 작품이 여럿 눈에 띈다.

'문틈으로 칼날 밀어 넣는 너 누구니/작별하고 쓸쓸하여 죽도록 몸져누운/시린 살 핥는 비수 꽂힌 혀의/너는 누구니…(중략) 겨울,그 광야 해시계 바늘로 선/나목 한 그루까지 끝내 자물리고 마는/달 그림자도 없는 그믐밤/자객처럼 나를 노리는/거기 너 누구니'('너는 누구니?' 중)

'바다'와 '저녁'도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시·공간이다.

이 시·공간은 함께 어울려 종종 개펄의 노을을 만들어 내고 시인은 그 속에서 저녁해처럼 낮아질 것을 이야기한다.

'섬기자.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받들자./개펄 위에 엎드린 저녁 해의 그림자.함께 부는 바람의 어깨가 주름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도 섬기자./곱고 미끈하게 젖어 있는 지표 아래서는 얼마나 분주할까.

그 위에 꽃가루로 쏟아지는 햇살,지상에 닿자 사심 없이 엎드려 절한다.

녹아버린다.

태양도 겸손하게 자신을 숙여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질서 위에 몸을 낮춘다.

/본원의 마음으로 서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없나니.…(하략)'('그리고 노을' 중)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