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이래 주로 미국에서 정보기술(IT),생명과학,신소재산업에 기반한 '신경제'가 자주 거론된다.

19세기 말 전기,화학,자동차산업이 주도했던 2차산업화를 능가할 새 국면을 맞아 투자와 이윤이 늘고 재고량이 줄어 경기변동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 같다.

과연 '신경제'는 결국 장기호황을 불러 올 것인가.

가까운 과거의 대호황을 돌아보자.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와 1970,80년대 장기침체 사이의 1950,60년대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미국에서 1871∼1996년에 총요소생산성(TFP,노동생산성과 자본생산성의 기하평균) 증가율은 저속-고속-저속의 초장기 파동을 보인다.

다른 나라의 '따라잡기'로 이 추세는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물론 자본주의 황금기에 TFP 증가율이 월등하게 컸다.

이는 무엇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소위 '2차 산업혁명' 기간에 이루어진 4대 혁신 기술의 군집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효과가 정점에 도달하고 경제전체에 전파된 것이 '황금기'이며 이후 수확체감에 따라 생산성 증가율이 점차 낮아졌다.

4대 발명군집이란 전기(전기조명,전기모터,가전제품,냉방장치),내연기관(자동차,항공기와 이에 따른 교외형성,고속도로,슈퍼마켓),석유와 '분자재배열' 공정(석유화학,합성수지,의약품),오락·통신·정보혁신(전신,전화,라디오,영화,TV,음반,신문잡지) 등이다.

실내배관,공공인프라(상하수도,오물처리)를 다섯 번째 발명군집으로 추가할 수 있다.

이들 기술혁신은 20세기 이후 인류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기술혁신의 효과가 왜 늦게 나타나는가? 일반목적기술(GPT)의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해 체제전환을 위한 구조조정과 적응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GPT란 특정 신제품이나 이를 만드는 신공정이 아니라 경제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개량이 가능해 널리 응용할 수 있다.

이 잠재력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지연과 불연속이 있을 수 있다.

구조조정과 적응에 시간과 비용이 드는 만큼 초기에는 오히려 산출,생산성,고용이 하락해 '장기파동'을 보인다.

이외에도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는 이민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고 노동인구 급증이 임금상승을 짓눌러 노동절약적 설비의 도입을 지연시켰다.

전간기의 고율관세도 국제무역을 감소시키고 생산성 상승을 제한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도 물론 컸다.

역사적으로 GPT에는 수차·증기·전기·내연기관 같은 동력전달시스템,철도·자동차 등 교통혁명,레이저,인터넷 등이 포함된다.

이 개념을 확대해 공장제도,대량생산,유연전문화(다품종 소량생산) 등 '조직기술',화학공학 같은 지식구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 예로 20세기 초 미국의 공장전기화를 보자.소위 전동기 기술혁신으로 1920년대에 제조업 동력 가운데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서 80%로 급증하고 수력,증기력 공장은 쇠퇴했다.

1910년대에 이미 발전과 송전이 집중화·대규모화하여 규모의 경제를 누렸다.

동시에 지방정부 규제에서 벗어났고 전기요금도 인하됐다.

공장 내부의 동력전달방식도 달라졌다.

굴대나 피대를 이용해 몇몇 연관된 기계들을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크기의 모든 기계·기구에 각각 전기 모터가 하나씩 장착했다.

그래서 연료나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다.

공장을 단층,선형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재 흐름도 한결 빨라졌다.

공장설계와 공장입지가 변화하면서 1920년대와 이후 1950년대에 TFP 상승이 가속되었다.

1950∼1973년 대호황이 평상 시 추세로 복귀하는 잠재적 국면인가 아니면 장기파동에 의해 다시 도래할 순환적 국면이었는가.

황금기가 다시 올 지를 파악하려면 여러 요인을 검토해야 한다.

유럽통화동맹의 출범 등 국제금융체제의 변화,세계무역기구(WTO) 정착과 지역주의 등 무역질서의 재편,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노력 등 국제환경과 지난 황금기 때처럼 노사 간 협조균형을 이룰 분위기가 다시 찾아올지의 여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큰 관심사는 19세기 말,20세기 초처럼 기술혁신 군집 효과를 다시 볼 수 있느냐의 여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미국의 생산성(노동생산성과 TFP)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것이 신경제 장기파동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신경제 옹호론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2001년 이후의 성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신경제가 언제 어느 정도로 꽃을 피울지는 예측불가다.

그러나 과거의 진보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는 미래의 진보능력에 대한 믿음도 곧 잃을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