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의 환희와 감동을 간직한 채 2006 한국프로야구가 8일 대장정을 시작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개막전 대진이 지역 라이벌전으로 이뤄져 팬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대구에서 벌어지는 공식 개막전인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일전이 최고 흥행카드로 떠올랐다. 쓰러져 가는 대구구장, 지난해 우승팀 삼성, 감독 교체로 면모를 일신한 롯데 등 경기 내외적인 요인이 이날 승부의 관전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지만 역시 최고의 볼거리는 이날 삼성의 선발 배영수와 롯데의 4번 주포 펠릭스 호세와의 맞대결이다. 2001년 9월18일 마산구장. 동료 얀이 배영수에게 볼을 몸에 얻어 맞자 1루에 있던 호세가 냅다 마운드로 달려가 핵펀치를 내질렀고 이를 피할 겨를이 없던 배영수는 안면을 강타당한 뒤 힘없이 쓰러지던 장면은 25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충격 영상 중 하나다. 이후 5년이 흘러 이들은 다시 마주했다. 2004년 다승왕,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 등을 거머쥐며 한국의 에이스로 거듭난 배영수는 "호세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이라며 대결을 즐기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불혹의 나이에도 멕시칸리그에서 타율 0.370대의 고감도 타율을 자랑했던 호세는 롯데가 공격력 강화를 위해 삼고초려의 갖은 정성을 쏟은 끝에 데려온 부동의 해결사다. 지난 3월25일 일본 후쿠오카 야후돔에서 벌어진 WBC 한국 대표팀과 롯데의 연습경기에서 배영수는 호세를 상대해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배영수의 페이스가 막 올라오던 시점이라 결과는 무의미하나 악연으로 점철된 사이라 맞대결 자체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충분했다. 올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서는 서로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배영수와 호세의 맞대결은 이날 승부의 핵심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배영수는 지난해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무사사구 완봉승을 이끌며 시즌을 힘차게 출발했다. 배영수는 2002년 6월23일 대구전부터 지난해 8월31일 대구전까지 롯데전 14연승을 거둔 자타공인 '거인킬러'다. 배영수는 아직 밸런스를 회복하지 못해 선동열 감독의 신뢰를 100% 찾지 못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롯데전을 통해 반전을 노린다. 요주의 인물 호세만 피하면 가능하다. 롯데 유니폼을 다시 입은 호세는 주포로서 절대 열세에 놓인 삼성과의 상대 전적을 최소 5할 수준으로 돌려 놓을 임무를 부여받았다. 롯데는 지난해까지 통산 상대 전적에서 삼성에 162승 11무 274패로 완벽히 뒤졌다. 지난해에도 4승 14패로 철저히 밀렸고 2004년에는 무려 16승이나 삼성에 헌납했다. 롯데가 4강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특정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 없어야 가능하다. 이는 전적으로 브라이언 마이로우, 이대호 등과 더불어 롯데 중심 타선을 형성할 호세의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출발점은 역시 '타도 배영수'다. 개인적인 악연 못지 않게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정리된 양팀의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배영수-호세의 맞대결은 개막전부터 흥행 돌풍을 몰고올 빅카드임은 분명하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