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비정규직법안이 15개월여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비정규직의 차별해소와 남용규제 방안을 담은 비정규직법안이 처리됨으로써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돼 근로계층간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기간제(계약직) 근로자 사용사유기한, 불법파견시 고용의제(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빠르면 3월1일부터 비정규직법 처리에 항의하는 총파업에 돌입키로 함에 따라 철도노조와 서울메트로(옛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과 맞물려 노동계의 춘투가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 비정규직 보호 법적 근거 마련 = 비정규직법안은 기간제 근로자 등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고 일정 기간 사용후에는 사실상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것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그 수가 급증하면서 사회 문제화한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회 안전망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기업들이 저렴한 인건비에 고용조정이 쉽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채용을 무분별하게 늘리면서 2001년 360만명에서 올해는 548만명(전체 근로자의 36.6%, 노동계 추산 850여만명)으로 급증했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게 된 것은 정규직 노조를 안고 있던 대기업들이 정규직 노조에 대한 양보로 발생한 손실이나 이익 감소분을 주로 비정규직 채용으로 메워왔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사 양측과 이를 방관한 정부에도 일정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은 월평균 임금(116만원, 2005년 기준)이 정규직(185만원)의 62.6% 수준에 그치는 등 근로조건과 복지 등에서 큰 차별을 받아왔다. 또 법적 기준이 없는 비정규직 문제가 최근 노사간 임단협에서 주요 쟁점으로 논의되면서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노(勞)-노(勞) 갈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번에 마련된 비정규직법안이 시행되면 근로계층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통합과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비정규직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법안 어떤 내용 담고 있나 = 이번 법안은 기간제와 파견 근로자 등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 원칙을 명문화하고 노동위원회를 통한 시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2년 동안은 제약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2년을 초과하면 무기근로계약으로 간주해 사실상 정규직화하도록 했다. 현재는 근로계약 기간이 최장 1년으로 제한돼 있으나 사업주가 근로계약을 반복해 갱신하는 방법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기간에 대한 제약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는 2년을 초과해서 사용할 때는 고용의무를 적용하고 불법파견시에도 사업주에게 고용의무를 부과토록 했다. 단시간근로자에 대해서도 법정근로시간(주당 40시간) 이내라도 초과근로시간이 1주일에 1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단시간 근로를 남용할 수 없도록 했다. 아울러 사업주가 차별시정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불법 파견시 사용사업주에 대한 형량을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상 벌금형으로 강화했다. ◇ 노사 모두 반발, 노사정 관계 경색 우려 =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안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발하고 나서 가뜩이나 경색된 노사정 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는 핵심 요구사항인 사용사유제한, 불법파견시 고용의제 적용 등이 받아들여지 않았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경영계도 이 법안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약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기만하는 개악안"이라며 "민주노총은 절대 이 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강력한 총파업으로 비정규직법 철회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날 저녁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법 통과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진데 이어 3월1일께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특히 철도노조와 서울메트로노조가 노사 협상결렬로 예고한 대로 3월1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경우 민주노총 총파업과 맞물려 노동계의 춘투가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우세하다. 비정규직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해왔던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여야가 합법 파견기간 이후에 대해 종전의 `고용의제'를 `고용의무'로 바꾸는 등 비정규직법을 파행 처리했다"며 "여야 정당을 상대로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재계의 불만도 적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노동계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며 "앞으로 기업 인력운용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은 물론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youngb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