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의 석유대국 이라크에 석유대란이 벌어졌다. 에너지 수급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휘발유값이 9배나 인상돼 주민들의 항의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정정불안과 유혈사태로 원유 수출은 이라크전쟁 이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석유를 팔아 재건 비용을 충당하겠다고 장담한 미국과 이라크 정부의 구상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새 정부 구성을 둘러싼 종족·종파 간 갈등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새 국가 출범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원유 수출 '바닥'


지난달 이라크의 하루 평균 원유 수출량은 110만배럴로 전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CNN 등 주요 외신들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라크의 원유 수출량은 1980년대 하루 800만배럴에 이르렀으며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에는 평균 180만~250만배럴,작년 초까지만해도 하루 180만배럴에 육박했다.


미국은 당초 지난 2003년 5월 이라크 점령 후 석유 수출을 허용하면서 2004년 말까지 수출량을 하루 300만배럴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실제 석유 수출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 정부는 석유수출이 감소한 주원인으로 전쟁으로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된 점과 저항세력의 공격을 꼽고 있다. 이라크 내 최대 정유시설인 베이지공장이 지난달 21일 테러 위험을 피해 2주간 가동을 중단한 게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이라크 주민들은 정부의 무능함을 주 요인으로 꼽고 있다.


◆기름값 인상 반대도 확산


이라크 정부가 지난달 19일 휘발유값을 9배 인상하면서 키르쿠크 사마와 등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난 1일 이라크 내 최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에서 열린 대규모 항의시위에선 경찰 발포로 주민 2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라크 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하루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며 "정부 조치로 이라크 내 기름값이 조만간 갤런당 1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이브라힘 바르 알 울룸 석유장관은 2일 "기름값 인상 조치는 정부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사임했다. 이라크 정부는 아흐마드 찰라비 부총리로 하여금 후임 석유장관을 겸직하게 했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번 기름값 인상이 이라크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간 협약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는 IMF로부터 채무를 면제받는 대신 석유 보조금을 삭감하기로 약속했다. 이라크 정부의 석유 보조금은 연간 약 50억~70억달러로 이라크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달한다.


◆정국 혼돈 여전


지난달 15일 총선 이후 집권당에서 소외세력으로 전락한 수니파들은 시아파-쿠르드 연합세력의 집권을 용인할 수 없다며 반발해왔다.


그러나 국민 통합 정부를 만들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수니파도 새 정부 구성에 협력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수니파 주요 정당의 참여가 무장세력들까지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