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부 선전에서 브라운관과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모듈을 생산하는 삼성SDI 공장 식당 입구에는 "6시그마 올림픽 3관왕"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11월 부산에서 치러진 삼성SDI의 12개 국내외 사업장 경연대회 최우수 사업장,동호회 1위,블랙벨트(6시그마 자격증의 일종 )부문 금상을 싹쓸이 한 것이다. 같은 달 말레이시아 헝가리 등 해외 6개국에서 가동중인 SDI 공장의 품질관리 담당자 20여명이 선전 공장을 찾았다.생산성 1위의 비결을 전수받기 위해서다. 그들은 뭘 배우고 갔을까. 박영우 선전 법인장은 공장 한쪽에 자리한 집한실(땀이 모이는 방)을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1년여 만에 구축한 업무 투명 시스템의 지휘 본부다. 사방이 온통 도표로 채워졌고 정면의 대형 화면에는 4개 라인의 그날 작업 성적을 포함,지금까지의 성적표가 그래프로 뜬다. 가급적 모든 업무를 숫자화하고 전산화함으로써 보이지 않던 문제까지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고 해 '굿바이 아킬레스' 운동이라고 명명했다는 게 박 법인장의 설명이다. "다른 사업장은 관리하는 지표가 5~10개에 불과하지만 여기엔 56개나 됩니다. 4개 라인 200여개 지표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지요." 하루 24시간 가동하는 이 공장에서 매일 오후 5시30분이면 제조현장의 과장급 이상 간부 30여명이 집한실로 모여 문제 해결책을 토의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곳 1개 라인에서 나오는 브라운관이 하루 1만500개로 늘었다. 다른 해외 사업장은 물론 부산공장의 8000개를 훨씬 웃돈다. 검사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등 인력활용의 효율도 높였다. 매출액 이익률도 8.4%로 다른 사업장의 평균 6%보다 높다. 박 법인장은 "삼성이 브라운관 사업을 시작한 지 35년 만에 숙제를 푼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쉽진 않았다.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나면서 생산성이 초반에는 떨어져 직원들이 적극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패널의 폐품 비율이 지난 1월만 해도 100만개 기준으로 500개였으나 6월 900개로 껑충 뛰었다. 지금은 200개 수준으로 다시 떨어졌다. 리궈펑 제조팀장은 "시스템 구축은 반강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만족단계를 넘어 환희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인 직원들은 지난달 스스로 돈을 갹출해 박 법인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선전 공장이 최고의 생산성 있는 사업장으로 올라선 데는 중국인 직원들의 자질도 한몫했다. 박 법인장은 "1900명 직원 중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1200명은 100%가 공고 출신이어서 암페어 같은 용어도 다 알아듣고 6시그마 품질기법도 쉽게 배운다"며 "인문계 위주의 한국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교육 기간도 6주로 어떤 사업장보다 길다. 근속연수 3년으로 부산공장의 5분의 1,급여는 부산의 7분의 1 수준이지만 생산성이 높은 이유다. 과장급 이상 간부 자리 45개 중 43개 자리에 현지인을 앉힘으로써 중국인 직원들에게 비전을 주는 것도 선전공장의 특징이다. 리궈펑 제조팀장은 선전공장의 2인자다. 박 법인장은 "중국인이 법인장이 되는 회사 최초의 사업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다. 주재원들의 역할은 기술 제고,영업,본사와의 협력 등에 그치고 있다. 박 법인장은 "5.3시그마(100만개 중 72개 불량)까지 달성했다"며 "100만개 중에 3.4개 불량이 나온다는 6시그마가 꿈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꿈을 같이 꾸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 공장=저임 노동력에 의존한 생산기지'란 등식이 깨지고 있었다. 선전=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