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 1960년대말 아시아지역에서 공산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역방위기구(안보기구) 창설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과 군속이 비전투 중 사상사고를 내면 보상책임은 미군이 지고, 미국이 지급한 한국군의 해외참전수당도 태국과 필리핀군이 받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방부는 이 같은 내용들을 담은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 총 17권 1천700여쪽을 2일 오후 공개했으며 여기에는 국군파월에 관한 국회동의, 한월 및 한미간 군사실무약정서, 해외근무수당, 한국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 자료 등이 포함돼 있다. 앞서 외교통상부는 8월25일 브라운 각서를 포함해 1965∼73년 기간에 걸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 총 49권, 7천400여쪽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과 북한 같은 공산세력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로 '지역적 방위기구' 창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미국과 교섭하도록 지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이 1.21사태를 기도하고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말에 이 같은 기구 창설을 추진했으나 관련부처에서 일본과 대만이 참여하지 않는 내용의 시안(試案)을 작성하는 등 현실성이 떨어져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박정희 정부는 1965년부터 2년간 미국 정부와 협상을 벌인 끝에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과 군속이 비전투 중 사상사고를 내면, 그 관할권은 한국군이 가지되 보상책임을 미군에 넘기는 방안을 관철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협상 결과 양국은 주월한국군사령부에 '소청사무소'를 설치해 독자적으로 민사사건을 처리하고 소청사무소에서 판정한 소청 지급액은 주월미국군사원조사령부 법무관이 지불을 보증하도록 한 것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외무장관 시절(1967∼1971년) 베트남 참전국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반북 외교전'을 펼쳤던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최 장관은 1969년 5월과 1970년 7월 방콕,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각각 열린 제3∼4차 파병국 외무장관회의를 통해 1.21사태,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도발사례를 열거하면서 반북외교에 나섰다. 이런 노력으로 4차 파병국 외무장관회의에서는 '북한이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주한미군 2개 사단이 차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북한의 도발사태가 계속되자 남한이 핵개발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박정희당시 정권에 NPT 가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정희 정부는 1968년 7월 미측에 NPT에 가입하겠다는 통보를 해놓았지만 NPT에 가입하면 핵무기 개발이 원천 봉쇄되고 NPT에 가입하지 않은 중국의 핵공격 가능성을 우려하는 등 당시 심각하게 고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미국이 한국군에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이 태국과 필리핀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이들 국가와 거의 비슷한 액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개된 '파월장병 처우개선' 자료를 액면 그대로 보면 필리핀군의 해외근무수당이 한국군의 그 것보다 액수가 많지만, 이는 자국정부로부터 받은 수당을 합산한 수치이기 때문에 미측으로부터 받은 실질수당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외근무수당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지급받은 것"이라며 "미국은 해외근무수당과 관련한 각종 문서를 파기 승인이 날 때까지 '2급비밀'로 분류해 보안을 철저히 지켜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구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공개문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부상한 한국군에게 지급된 재해보상금이 총 65억563만7천여원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최용호 전쟁사2부장이 국방부 자료실에서 찾아낸 '주월군 경리지원(파월재해금 정산자료)' 자료에 보상금 규모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그러나 정부는 해외근무수당과 별도로 미군들이 받는 전투수당(월 65달러)을 한국군도 받을 수 있도록 협상을 했지만 미국의 완강한 반대로 관철하지는 못했다. 공개된 문서는 5일부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정보자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