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위상에 맞게 국제기구 등에 적극 참여토록 해 일정부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 기업의 무차별적인 외국기업 인수합병(M&A) 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왔던 이제까지의 '중국 위협론' 또는 '중국 견제론'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밉든 곱든 중국의 존재와 비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을 잠재적인 최대 경쟁국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이 같은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와 관련,미 국무부의 로버트 죌릭 부장관은 최근 "과거 30년간 우리는 중국을 단순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요구해왔으나 이제는 국제시스템의 책임있는 참가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역할분담론은 국제사회에서 '대국'으로서 위상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중국 지도부의 의중과 맞닿는 측면이 많아 향후 중국 부상에 따른 세계 질서 재편과정에서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급부상하는 '중국 역할분담론' G7(선진 7개국) 또는 G8(선진국 7개국+러시아)그룹에 중국을 회원국으로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팀 애덤스 미 재무차관은 지난 9월 G7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중국 등 신흥 5개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공론화에 나섰다. 실제 중국의 G7 가입론은 올 들어 부쩍 확산되는 양상이다. 340여개 기관투자가 모임인 국제금융연구소의 찰스 달라라 소장은 "G7에 중국 인도 등 4개국을 추가해 G11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 상무부 부장관 출신인 그랜트 알도나스도 "중국을 참여시키지 않고 세계 경제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UN 등 국제기구에서 중국의 분담금 및 쿼터(투표권 지분)를 늘려야한다는 주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는 지난달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의 세계 경제 위상에 걸맞게 IMF 내에서의 역할도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는 '중장기 전략검토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쿼터를 현재의 2.98%에서 7.56%로 늘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내놓고 있다. 코피 아난 UN사무총장 역시 지난 9월 뉴욕에서 UN 창설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 앞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돕고,경험을 전수해줘야 한다"고 중국 책임분담론에 가세했다. 일본은 아예 UN에 중국의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오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분담금을 새로 정하는 내년 3월 UN분담금 책정위원회에서 현재 2.1%에 머물고 있는 중국의 분담금을 올리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중국은 개도국이라는 이유로 분담금 특별 감액조치를 받고 있다. 회원국의 국민총생산(GNP)비율을 기초로 산정하는 유엔 분담금은 미국 22%,일본 19.5%,독일 8.7% 순으로 내고 있다. ◆위안화 추가절상론도 강해져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위안화 추가절상 문제도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중국이 국제 무역 불균형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지에서다. 이와 관련,중국 현지에서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과 존 스노 재무장관이 내주 방중하는 데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린스펀 일행은 오는 15~16일 베이징 인근 소도시에서 G20(G7+개도국) 중앙은행총재 및 재무장관 회의,16~17일 상하이에서 미·중 합동경제위원회에 잇따라 참석해 중국에 위안화를 추가절상하라고 압력을 넣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를 위해 주중 미국대사관에 상주하면서 중국과 위안화 환율체제를 협의할 금융대표직을 신설,데이비드 로빙거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담당 부차관보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20년 전 일본에 국제 무역 불균형의 책임론을 내세우며 엔고를 유도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낸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중국의 대응 중국 당국도 역할분담론에 대해 긍정적이다. 특히 G7 가입 문제는 중국이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G7 중앙은행총재 및 재무장관 회의에 처음 참석한 데 이어 올 들어 2월,6월,9월 잇따라 같은 회의에 참가해 사실상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중국은 또 개도국 지원에 대해서는 국제사회 위상 제고를 의식,상당히 적극적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9월 UN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앞으로 3년 동안 개도국을 대상으로 100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해 인프라 시설 개선에 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말로 만기를 넘긴 개도국 저리·무이자 차관에 대해서는 부채를 전액 탕감해 주겠다"고 선심을 쓰기도 했다. 이 밖에 39개 극빈국들이 생산하는 물품은 관세 없이 수입해 주기로 했으며 향후 3년 동안 개도국 인력 3만명에 대한 연수도 지원키로 했다. 지난 25년간 받아왔던 해외 식량원조를 내년부터 받지 않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다만 위안화 추가절상에 대해서는 "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위안화 절하 압력을 끝까지 버텨내 결국 아시아 경제회복에 기여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