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재앙 한 달도 안돼서 닥친 허리케인 리타 공포에 떨던 미국이 예상보다 적은 피해에 안도하고 있다. 한 때 카트리나보다도 더 강력한 5등급 위력을 떨치던 리타가 이처럼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내고 지나간 것은 상륙 시점의 위력이 약화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트리나 때와는 전혀 다른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카트리나 때는 허리케인이 지난뒤 나흘이 지나서야 해상 구호작업본부 역할을 할 항공모함 해리 크루먼호가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해역에 파견됐다. 이에 비해 리타 때는 허리케인이 오기 이틀 전에 벌써 콜로라도 스프링스 미군 북부사령부에 첨단 지휘본부가 차려졌다. 훨씬 안정적인 장소에 지휘부가 마련된 것은 물론이고 통신두절에 대비해 위성전화 설비가 긴급 가설되는 등 카트리나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비들이 이뤄졌다. 또 카트리나 때는 2만8천명의 병력이 허리케인이 지나고나서 며칠 뒤에야 배치됐지만 리타 때는 5만명의 병력이 허리케인 상륙전에 미리 배치돼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미군은 이밖에 수색구조작업을 위해 26대의 헬기를 대시켰으며, 병원선 컴포트 등 군함 6척을 텍사스주 연안에 급파했다. 해안경비대도 40대의 항공기를 동원해놨다. 이는 카트리나가 지나고 며칠 뒤에야 군함을 투입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늑장대처 비난을 뒤집어썼던 연방재난관리청(FEMA)도 이번에는 발빠른 대응에 나서 165대분의 얼음과 185대분의 식수, 98대분의 식량 등 충분한 식량과 음식물을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 곳곳에 미리 배포했다. 부시 대통령도 이번에는 바짝 긴장하고 재해 대책 지휘에 나서 리타 상륙 전날 이미 FEMA본부에 들러 상황을 점검했으며, 다음날에도 리타 대책본부가 차려진 콜로라도주의 북부사령부를 방문하는 등 온종일 리타 업무로 보냈다.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 때는 허리케인이 지난 뒤 이틀이 지나서야 피해지역을 방문했으며 그나마 헬기가 아니라 육상에서 직접 피해상황을 둘러본건 무려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주에 대한 비상사태도 카트리나가 지난뒤에야 선포됐지만 리타 때는 상륙 사흘전인 지난 21일 벌써 이같은 조치가 취해졌다. 미 국방부 역시 카트리나 때는 이틀뒤에야 러셀 호노어 중장을 대책본부장으로 임명했지만 이번에는 로버트 클라크 중장이 일찌감치 리타 대책 총책으로 지명됐다. 특히 군은 이번에 피해 예상지역의 39개 병원과 요양원에서 노인과 환자들을 공중 수송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주방위군도 휘발유가 떨어진 자동차에 기름을 공급하는 등 대피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을 적극 지원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대피가 빨리 시작됐던게 인명 피해를 줄인 요인이다.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가 상륙하기 하루 전에야 강제 대피령을 내렸지만, 이번에 텍사스 연안 도시들은 사흘전부터 강제대피령을 내려 주민들에게 대피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부시 대통령과 행정당국은 리타 피해가 예상보다 적은데 안도하는 한편으로 카트리나의 실패를 교훈삼아 리타 피해를 최소화한 점을 적극 부각시키려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리타의 주요 피해지역이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주라는 점까지 맞물려 '카트리나 때는 왜 이번처럼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비난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