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가위 달 좋다 하지만/오늘밤은 더더욱 아름답구나/온 하늘 바람 이슬 고요도 한데/만리라 산과 바다 한빛이로세/고국에도 응당 같이 보게 될지니/온 집안이 아마도 잠 못 이루걸/뉘라서 알리 서로 그리는 뜻이/예나 제나 다같이 까마득함을." 고려 말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간 정도전이 한가위 달을 보며 지은 시인데 향수가 절절이 배어나는 듯하다. 어느 명절도 그렇지만 특히 추석은 달과 함께 고향을 떠올린다. 뿐만 아니라,햇곡식에 햇과일에 먹거리가 풍성하고 날씨도 덥거나 춥지 않아 삶의 여유를 찾기에 그만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말에는 바로 추석 때처럼 잘 먹고 잘 입고 편히 놀고 살았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언론인 천관우씨가 '신세시기(新歲時記)'에서 노래한 추석도 신바람이 난다. "남이 추석이라 하니 나도 추석이라 해서 좋고,때때옷 입는 어린이들이 추석이라 하니 어른 역시 추석이라 해서 좋다. 세화연풍(歲和年豊)해서 이 날을 즐겨도 좋고,거친 세파에 이날은 쉬어보자 해서 이 날을 즐겨도 좋다. 가을 바람이 좋고,가을 달이 좋지 않은가." 이렇기에 추석명절이 돌아오면 귀성인파로 전국 도로가 미어진다. 몸은 비록 고달파도 마음만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성묘를 하고,어른들을 찾아 뵙고,마당에 멍석을 펴놓고서 송편을 빚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을 것이다. 한동안 뜸했던 고향친구들과의 만남은 곧 개구쟁이 시절로 세월을 되돌려 놓기 일쑤다. 그러나 추석이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취직을 못해,생활이 어려워,결혼적령기를 넘겨 아직도 미혼인 사람들에게는 명절이 돌아오는 게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원초적 감정이라는데 당사자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다. 다행히 경기가 바닥을 치고 앞으로 호전될 것이라고 하니 애태울 일만은 아니다. 부디 올 팔월 보름달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온기를 듬뿍 머금고 우리 모두에게 포근히 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