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플래시 저가 공급이 배경..국내 업체 "대책이 없다" "사고가 터졌다"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의 '절대 강자'인 미국의 애플컴퓨터가 8일(현지시간) '아이팟 나노'를 공개한 데 대해 국내 업체 관계자들의 첫 반응은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애플컴퓨터가 삼성전자[005930]의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한 '아이팟 나노'가 예상을 뛰어 넘는 낮은 가격으로 출시되는 것에 대해 "삼성전자와 애플이 중소형 MP3P 업체들을 고사시키기 위한 합동 작전에 돌입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이팟 미니' 2GB 제품이 199달러 애플의 간판 모델인 '아이팟 미니'를 대체할 '아이팟 나노'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장착한 '미니'와 달리 플래시메모리를 탑재하고 있다. 플래시를 채용하면 HDD에 비해 전력소비가 적어 배터리 사용시간이 길고 충격에도 강하며 '딜레이' 현상도 적지만 저장용량이 작고 값이 비싼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아이팟 나노'는 500곡을 저정할 수 있는 2GB 제품을 플래시메모리형 512MB 제품 가격 수준인 199달러, 1천곡을 저장할 수 있는 4GB 제품을 249달러에 내놓았다. 플래시를 탑재해 크기도 명함 정도로 줄었다. 두께는 0.6cm이고 크기는 9×4cm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9일 "동급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싸다"면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이 이 정도 가격이 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업체들은 사실상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의 배경은 삼성전자 애플이 이처럼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의 '파격적인' 가격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업계 관계자는 "MP3P 전체 가격에서 저장장치가 50%를 차지하고 있고 마진율을 20% 정도로 감안할 때 애플이 플래시메모리를 HDD 가격에 공급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것은 통상 가격의 50% 정도를 할인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의 김남형 애널리스트도 "애플이 삼성전자의 하반기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최고 40%를 구매 예약했다"면서 "삼성전자는 아이팟의 플래시 타입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애플에 매우 싼 값으로 칩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의 2분기 플래시 마진율이 45% 내외였다면서 이번에 애플에 공급할 때는 HDD 가격에 맞추기 위해 노마진이나 손해를 보고 팔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MP3P, 디지털카메라, 카메라폰 등에 주로 사용되는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 5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 업체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향후에는 다시 가격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애플도 다시 HDD로 회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전략은? 삼성전자가 MP3P 시장의 경쟁자인 애플에 싼 값으로 플래시메모리를 대량 공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김 애널리스트의 분석대로 MP3P 업체들의 플래시 전환을 유도해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하는 데 1차적인 목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외에도 적어도 2가지의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애플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중소형 MP3P 전문업체들을 고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MP3P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낮은 수준이다. 가격정책을 통해 중소형 업체들을 가장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는 회사는 애플 뿐이다. 세계 시장은 그렇찮아도 경쟁격화와 선도업체들의 가격정책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실제로 세계 MP3P의 원조 격인 일본의 리오가 지난달말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MP3P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고 싱가포르의 크리에이티브도 막대한 손실로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올초 향후 세계 MP3P 시장이 삼성-애플-소니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삼성은 앞으로 중소업체들을 모두 퇴출시키고 명실상부한 3강체제가 될 경우 애플에 대한 플래시메모리 공급을 지렛대로 삼아 2차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삼성은 또 애플에 대한 플래시 저가 대량공급을 통해 애플에 HDD를 공급해온 히타치, 도시바, 시게이트 등에 큰 타격을 입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됐다. ◇국내 중소 MP3업체들의 활로는?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아이팟 나노' 출시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레인콤 관계자는 "아이리버는 2,4GB인 '아이팟 나노'와는 달리 512MB가 주력 제품이고 최근 출시된 U-10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레인콤의 야심작인 U-10은 출시 4일만에 5천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크레들을 제외하고도 1GB 제품 가격이 33만9천원이다. 반면 애플은 2GB 제품이 20만원, 4GB 제품이 25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통상 기능은 국내 전문업체가, 디자인은 애플이 낫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으나 가격이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기능적인 우위가 무색해지게 된다"면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전자가 다른 업체들에는 2GB 플래시 모듈을 아예 공급하지 않고 있고 공급하더라도 애플같은 가격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인 도시바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주목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석 기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