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의 애팔래치아 산악 지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브렌트 케네디씨는 여느 고향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계 조상을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짙은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의 의문은 플로리다주의 DNA프린트 지노믹스라는 업체에서 199달러를 주고 DNA 검사를 받아본 뒤 해소될 수 있었다. 검사 결과 케네디씨의 피에는 북부 및 서부유럽계 유전자가 45%, 중동계와 터키 및 그리스계가 각각 25%, 남아시아계가 5% 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케네디씨는 1900년대 초 할아버지가 피부색이 짙다는 이유로 투표권조차 부여받지 못한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됐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7월11일자)는 미국에서는 케네디씨의 경우처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전적 계보학이라고 불리는 이와 같은 분석기법을 통해 자신이 지닌 유전자의 근원을 찾아나선 사람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등 유명인사를 포함해 모두 10만명이 넘는다. 건당 95달러에서부터 시작되는 유전자 테스트를 이용하면 면봉으로 긁어낸 뺨 안쪽 세포의 분석을 통해 조상이 아시아계인지, 아프리카계인지에서부터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혈연적 관계가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전미지리학회(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는 지난 4월부터 조상의 미국 이민 역사를 추적해주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은 현대 인류의 이민 궤적을 밝히는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이와 같은 유전적 계보학 테스트는 특히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했던 입양아 출신이나 노예의 후손들에게 눈물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어머니가 입양아 출신인 버지니아주의 부동산중개인 후아니타 톰슨(여)씨는 DNA 검사후 어머니가 아프리카 가나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에서 또다른 조각을 찾아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DNA 테스트를 통해 의문에 싸였던 집안내력을 규명해낸 사람들도 있다, 뉴멕시코주의 가톨릭 사제 윌리엄 산체스씨는 가족의 종교가 대대로 가톨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집안에서 사람이 숨졌을 경우 거울을 가리는 등 유대인의 관습을 지켰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산체스씨의 DNA 테스트 결과 그에게는 모세의 형제 아론의 직계후손으로 이뤄진 코하님 유대 종족의 피가 흐르는 것으로 판명됐다. 산체스씨는 그후의 추가조사를 통해 자신의 집안이 스페인에서 박해를 피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조상으로 둔 사실을 규명해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소중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이 유전적 계보학이지만 과학적 엄밀성에 대해서는 비판론도 만만찮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스탠퍼드 법과대학의 행크 그릴리 교수는 "유전자 검사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되면서 지나친 단순화와 과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유전자 분석 기법 가운데 'Y염색체 테스트'는 부계 혈통만을, '미토콘드리아 DNA 테스트'는 반대로 모계 혈통만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에 온전한 계보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타임은 밝혔다. 그릴리 교수는 "3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 사람의 조상은 1천명이 넘게 된다"면서 "유전자 검사는 그 1천명 가운데 한명에 관해 이야기해줄 뿐"이라고 말했다. 타임은 그러나 이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일부나마 해답을 제공하는 유전자 검사가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전기기술자 찰스 크레치너씨는 지금까지 3천달러를 들여 자신과 먼친척 9명의 유전자를 검사하고 역사적 기록과 비교한 결과 자신의 집안이 1500년대 스위스와 독일에서 유래했음을 밝혀냈다. 그는 그러나 "조상들이 살던 마을에서 한 핏줄의 사람들을 만나 맥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을 때까지 내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