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1989년 미국대사관 앞에서는 기초농산물의 수입개방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이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는데 개 중에는 강기갑·현 민노당 의원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끌려온 사람 대부분이 노총각들이었다. 그 자신도 40이 다 돼가는 노총각 신세였는지라 이는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내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를 만들었고 이 대책위가 장가보내기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텅텅 비어가는 농촌에서 배필을 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외국처녀들에게 눈을 돌리다 보니 이제는 농촌에서도 외국인들을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며칠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실감이 난다. 농어촌 남자들의 국제결혼 비율이 27.4%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4명 중 1명꼴로 외국 처녀를 맞아들였다는 얘기다. 좀체 상상키 어려웠던 일이 불과 10여년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국제결혼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완화되고 폐쇄적인 단일 혈통의 시각이 바뀌면서 앞으로 외국인과의 결혼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지난달부터 경북 성주에서는 농촌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국제결혼을 아예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농어촌 지역의 자치단체장들은 지역내에 있는 총각들 장가보내는 일을 주요 치적으로 꼽을 정도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다름아닌 코시안(Kosian)으로 한국인(Korean)과 아시아인(Asian) 사이에 태어난 2세를 일컫는 말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 남자와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라이 따이한'을 연상케 한다. 외국인 주부들이 이 땅에 살면서 언어소통이나 문화적인 차이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아이들 역시 또래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행여 농촌 총각들이 이러한 일들로 결혼을 미룬 채 마음이 상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